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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년 되지 않았는데,
요새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 한 축은 정권, 또다른 축은 언론, 그리고 수많은 보수단체들이네요.

보수단체 중 이름만으로는 왠지 건전한 이성을 가졌을 듯한 뉴라이트연합.
이들이 사실은 보수단체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이며,
우리나라 보수단체가 가진 불건전함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단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있었던 PD수첩 무죄 판결에 대해 뉴라이트연합이 내놓은 논평을 들어보셨나요?
'보도내용이 왜곡됐고 나라전체가 피해를 봤는데 무죄판결이라니'라며 흥분을 하고 있습니다.
보도내용이 왜곡됐다고 믿는 것까지는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정도로요.
나라전체가 피해를 봤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판결내용과 판사를 공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행동입니다.
백이면 백명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판결도 아닌데, 그렇다면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받아들여야 할 일이죠.
단지 유감 표명에서 그친 게 아니라 독설에 가까운 성명을 내어놓다니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싶어하는 건지, 한 가지 생각만 통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하는 건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심지어는 검찰총장마저도 이번 판결을 직접 비판했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가요?
검찰이 유죄입증을 자신하던 재판에서 졌고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니까 어느 정도 위축될 테고 방어할 필요가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총장까지 나서다니요?
법원을 뒤흔들어 입맛에 맞게 길들이기라도 하려고 작정을 한 것입니까?

모두들 좀더 이성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정치권, 보수단체, 보수언론만 그러할 때는 걱정을 하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검찰마저 이러한 행태를 보이니 심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네요.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법-검 갈등'이라는 게 단순히 언론사의 과장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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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기사를 한꺼번에 보았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대한통운 전 사장이 수만달러를 건넸다고 하는 기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화가 났는데,
노회찬 전 의원이 X 파일을 폭로한 것에 대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는 기사를 보며 다행이란 맘이 들더군요.
각각 다른 글로 이 기분을 표시하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묘하게 관련이 되어있더군요.

한 사람은 의혹이 있는 걸로 검찰에서 발표를 했고 언론이 보도를 한 사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의혹을 폭로해서 검찰에서 기소를 했고, 의혹 폭로가 정당했다고 법원이 손을 들어준 것이죠.
왠지 이 사람을 감싸려니 저 사람이 맘에 걸리고, 저 사람을 감싸려니 이 사람을 몰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두 분 다 제가 존경하는 정치인이고 믿는 분들이기 때문에 마치 진퇴양난이 된 것 같았습니다.
생각없이 무턱대고 감싸다가는 모순에 빠질 것 같더군요.
그래서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무엇일까요?
의혹 폭로가 정당한가? 만약 이것만이 문제의 전부라면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논란에서 반대 입장에 선 것이 됩니다.
이것만 보는 것이 옳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의혹 폭로의 정당성에 대해 일관된 기준을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두 문제에는 모두 검찰이 연루되어있고, 검찰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출처: 연합뉴스, 2차출처: 다음뉴스

의혹 폭로가 항상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얼마인지, 공익 목적인지, 방법이 정당한지,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없는지 종합적으로 봐야겠죠.
지금까지 거짓 의혹을 폭로해서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사례가 많았죠.
이게 사실로 드러나도 큰 처벌을 받지 않은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폭로를 통해 이득은 얻었지만 그로 인한 책임은 지지 않은 것이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번 한명숙 전 총리에 관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치인이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사실이 아닐 경우, 증거 하나 없이 증인 진술만 믿고 의혹을 폭로한 기관들...
검찰과 조선일보 등 언론사는 이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져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
허울좋은 이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누구나 이 말을 가져다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쓸 수 있습니다.
진실로 필요한 것은, 알 권리를 거론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여기엔 분명히 기자들의 특종 본능과 도덕성 사이, 균형 잡힌 자세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봐야겠죠.
이번 경우는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점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라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네요.


출처: 경향신문

그렇다면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 경우는 X-파일이라는 증거가 있었고, 이를 사실로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죠.
그리고 자칫하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을 위기였습니다.
이에 대해 수사의지를 촉구하기 위해 언론에 공개한 것은 필요한 행동이었다고 봐야겠습니다.
단지 검찰과 삼성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으니까요.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대로 흐지부지 끝내지 말고 끝까지 파헤쳐보라'는 주장이니까요.


출처: 뉴시스, 2차출처: 다음뉴스

앞에서 말씀드린 검찰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죠.
검찰이 해야 할 일은, 죄가 될 만한 사실이 있는지 밝혀내어 기소하고 증거에 의거해 법정에서 논증하는 것입니다.
판결은 법원에서 판사가, 혹은 판사들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내리는 것이죠.

그런데 요새는 검찰이 언론에 수사 정보를 과도하게 흘립니다. 매우 잘못된 행동이죠.
검찰이 언론에 제공해야 할 정보는, 기소할 것인지 않을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가 전부입니다.
법원에서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검찰이 다른 어느 정보도 외부로 발설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무죄추정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여론을 움직여서, 법정에 서기도 전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무죄추정원칙에 위배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계속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도 그러했고, 이번 대한통운 전 사장 수사에서도 그렇습니다.
수사 중 나온 말을 왜 언론에 공표를 하나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100% 확실한 사실이라 해도 발설하면 안될 것을, 증거도 없이 외부에 유출하다니 더더욱 안될 말입니다.


출처: 연합뉴스, 2차출처: 다음뉴스

노회찬 전 의원의 행동은 이와 다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검찰이 의혹이 있는 사건에 대해 수사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었죠.
다시 말해 검찰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검찰에게는 기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누가 옆에서 하라, 하지 말라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윤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열심히 수사해야 할 사건과 덜 열심히 해도 되는 사건은 있겠지요.
검사들과 삼성에 대한 수사는 오히려 열심히 수사했어야 할 사건이 아닌가요?

그래서 노회찬 전 의원이 나섰던 것입니다.
제발 한번 수사해보라구요.
이렇게 자신이 기소를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의혹을 폭로한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니까 일반 국민보다는 이런 의혹을 폭로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판단으로요.
지명도가 높아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은 데다가,
국회의원이라는 국가기관이 다른 국가기관인 검찰을 견제한다는 명분도 있었으니까요.

요약하자면,
의혹 폭로는 사실에 의거해서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검찰이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검찰은 수사를 열심히 하는 데 그 역할을 다 해야 하고, 또 그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그 의무를 게을리했던 경우에 대해 수사의지를 촉구했던 노회찬 전 의원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것은
법리적인 판단 뿐 아니라 위와 같은 역학관계에서 살펴봐도 좋은 판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론 환영합니다.
찬성 글도 환영합니다 ^^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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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인 누리꾼 20명을 출국금지조치했다더군요.
우스운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널리 알리고 계신 대로,
소비자의 특정 업체 불매운동은 소비자에게 부여된 권리고,
특정 매체에 대한 논조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그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같이 하자고 했다는 것만으로 처벌할 어떤 근거도 없죠.
그런데도 검찰은 이 일을 수사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검찰 왈, '적극적으로 가담한' 누리꾼 20명을 출국금지조치까지 하는 강수를 뒀습니다.
출국금지는 매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고 출국도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될 때 사용하는 것이죠.
검찰과 많은 국민들 사이의 괴리가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검찰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지요?

제가 묻겠습니다.
조중동이 포털 다음에 기사제공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죠?
이것은 왜 수사하지 않습니까?
소비자들의 불매운동보다 더 명백한 압력행사입니다.
여러 높으신 분들이 좋아하는 시장논리가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다음이 돈을 안내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조중동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다음 미디어가 조중동과 입장 차이를 보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영향력이 큰 신문들로부터 기사를 제공받지 못하면 포털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죠.
조중동은 그것을 노리고 다음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시장논리가 아닌 다른 잣대를 들이대어 불법 압력을 행사하는 조중동을 어서 수사해주세요!!!

검찰은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자신의 이익에 영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신문사가 포털에 기사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자유입니까?
그것은 불공정한 경쟁도 아니고, 법에 저촉되는 행위도 아닙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아 소비자가 기업에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까?
이것은 명백한 불법이고, 시장논리를 뒤흔드는 불공정 행위입니까?
바른 잣대를 가지고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추가: 뽕다르님의 글, '조중동 다음 뉴스 공급 중단과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가 쓴 글과 가장 가까운 듯합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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