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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MBC 뉴스데스크의 최장수 앵커였던 그를 저는 믿어왔습니다.
사장이 되어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를 사과하는 방송을 냈을 때도 믿음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파상공세에 MBC가 부러지지 않도록 잠시 물러서는 것일 뿐이라며...
작년에 있었던 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도우러 갔다고 했을 때도 설마 했습니다.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겠거니 하고...

그런 그가 결국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강원도지사 경선에 출마를 했습니다.
당선되기 위해서 연일 MBC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상대후보와 민주당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정치를 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네요.
그것도 집권여당의 힘을 등에 업어 가능한 한 더 쉽게 데뷔하고자 하는 평범한 정치꾼입니다.
제가 믿어왔던 엄기영은 허상이었습니다.
배신감?
그런 것은 없습니다. 제가 그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덮어씌웠던 것 뿐이죠.

이명박 정부로부터 쫓겨난 것이 아니라며 거짓으로 정부와 한나라당을 감싸지만 않았어도
PD수첩이 흠결 많은 프로그램이라며 자신의 전 직장을 팔아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잘보이려 하지만 않았어도
민주당이 MBC를 장악해서 최문순을 도운 것이라며 흑색선전을 통해 상대를 깎아내리려 하지만 않았어도
제가 이런 글을 쓰며 엄기영에 대한 제 잘못된 믿음을 고백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요.
반성합니다. 그에게서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된 생각을 했던 제 자신을요.
그가 더 실망스러운 일들을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저만의 바람일까요?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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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년 되지 않았는데,
요새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 한 축은 정권, 또다른 축은 언론, 그리고 수많은 보수단체들이네요.

보수단체 중 이름만으로는 왠지 건전한 이성을 가졌을 듯한 뉴라이트연합.
이들이 사실은 보수단체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이며,
우리나라 보수단체가 가진 불건전함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단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있었던 PD수첩 무죄 판결에 대해 뉴라이트연합이 내놓은 논평을 들어보셨나요?
'보도내용이 왜곡됐고 나라전체가 피해를 봤는데 무죄판결이라니'라며 흥분을 하고 있습니다.
보도내용이 왜곡됐다고 믿는 것까지는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정도로요.
나라전체가 피해를 봤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판결내용과 판사를 공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행동입니다.
백이면 백명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판결도 아닌데, 그렇다면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받아들여야 할 일이죠.
단지 유감 표명에서 그친 게 아니라 독설에 가까운 성명을 내어놓다니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싶어하는 건지, 한 가지 생각만 통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하는 건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심지어는 검찰총장마저도 이번 판결을 직접 비판했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가요?
검찰이 유죄입증을 자신하던 재판에서 졌고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니까 어느 정도 위축될 테고 방어할 필요가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총장까지 나서다니요?
법원을 뒤흔들어 입맛에 맞게 길들이기라도 하려고 작정을 한 것입니까?

모두들 좀더 이성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정치권, 보수단체, 보수언론만 그러할 때는 걱정을 하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검찰마저 이러한 행태를 보이니 심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네요.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법-검 갈등'이라는 게 단순히 언론사의 과장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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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무죄로 판결했더군요.
이번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고마워할 필요도, 판사를 치하할 필요도 없습니다.
판사로서의 양심과 법에 따라 판결을 내려줬을 뿐, 누구에게 유리하게 판단을 한 것이 아니니까요.
한 가지 격려할 것이 있다면, 지금처럼 정권의 압력이 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겠지요.
마음고생은 좀 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만약 제 기대와 다른 판결이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아직 저와 세상의 기준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아쉬워했겠지요.
속으로 아무리 열이 나고 마음이 쓰라리다 해도 세상을 탓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랬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단지 세상을 바꿔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겠지요.

그런데 이번 판결의 당사자 중 한명인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의 반응은 도가 지나치더군요.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공격하다 못해 해임운동을 하겠다고 하네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용인하지 못하는 태도.
그것이 과연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지닌 마음가짐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릇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되 다른 의견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죠.
들어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듣지도 않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천지차이가 아닌가요?

오랫동안 고생해온 PD수첩 제작진과 그 분들을 도와준 다른 많은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PD수첩과 같은 편에 섰던 여러 네티즌분들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검찰이 항소를 한다고 하니 2심, 혹은 3심까지도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제 기대대로 이뤄지리라 믿습니다.

건전한 비판을 해주신 분들도 고생하셨습니다.
다만, 무조건적인 비난을 일삼으신 분들은 반성하셨으면 좋겠네요.
우이독경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은 알지만요.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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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일들이 여럿 벌어지고 있군요.
오늘 본 기사 중에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재미동포 일부가 PD수첩을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하겠다는군요.
아레사가 미국에 유통되는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묘사해,
수년동안 그 소고기를 먹어온 자신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줬다는 것이 이유라던가요?
이것 때문에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면, 미국 소가 광우병에 걸렸던 것에는 왜 피해를 안받았지요?
분명히 그 뉴스를 접하고 혹시라도 광우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더 걱정하지 않았나요?
그런 피해를 받았다면 왜 미국 정부와 소고기 도축/유통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걸지 않았나요?
똑같은 논리로, 저는 한국 정부의 미국 소고기 수입조치에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니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되나요?

미국에 살다보니 손해배상과 법적 소송에 쉽게 전염된 모양입니다.
미국에선 그야말로 법에 기대어 무책임하고 허황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과다하니까요.
맥도날드 사태, 전기다리미 업체 사건 등 징벌적 손해배상 명령을 받은 경우가 실제로 있었고요.
작년 뉴욕 행정법원 판사가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과다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실패한 예도 있었죠.
(우리나라에서 큰 뉴스거리가 됐었죠.)

저는 이번 소송건에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신적 피해라는 것은 실제 입증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 입은 정신적 피해가 있는지, 그 피해가 얼마만큼인지를 증명할 방도가 없지요.
만약 입증된다 하더라도 한국에 있는 방송국이 미국 시민 다수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까요?
손해배상에 있어서는 반드시 피해자가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 정부나 소고기 유통업체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PD수첩 측이 불법적으로 피해를 입혔다는 것부터 입증을 해야되겠지만요.)
불특정 다수에게 입힌 손해라는 것은 처음부터 법이 정하는 손해배상의 범위에 들지 않지요.
만약 이런 모든 것이 한국 혹은 미국의 법정에서 인정된다면 그야말로 법치주의의 사망일이 될 것입니다.

이길 가능성도 없는 법적인 조치에 막무가내로 나선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다.
분명히 이들은 정치적인 의미로 소송을 한 것이죠.
김봉건이라는 사람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지 않지만, 그의 정치적 입지를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습지도 않은 소송, 지금 당장 집어치우기 바랍니다.
한국 국민도 아니면서 한국내 정치에 영향을 주고 좌지우지하려는 그 책동을 지금 당장 멈추기 바랍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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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스럽습니다.
언론 상황이 말이에요.

YTN 사장에는 구본홍씨가 와서 앉아있고, 게다가 정말 오만한 사장 행세를 하려 하고,
KBS 사장 정연주씨는 법에도 없는 근거로 해임되고, 그 뒤 검찰에 체포...
(그 와중에 KBS 노조는 자기 배만 불리려는 건지, 정권의 언론정책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정연주씨를 몰아내는 것에만 온힘을 쏟아부은 후, 노조 집행부를 징계했다는 이유로 언론노조를 심하게 깎아내렸더군요. 어이없는 사람들 같으니.)
그리고 어제밤 MBC 경영진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과 명령 수용.

엄기영 사장과 경영진의 고뇌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급했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과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법이 허용하는 모든 구제수단을 강구한 뒤에 수용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처럼 발빠르게 엎드려 굴복한 것은, 사안의 중대성으로 미뤄볼 때 매우 성급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엄기영 사장과 경영진에 대해 꽤 실망했습니다.
아직 신뢰를 거두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일이 계속된다면 그 땐 나도 마음을 돌리게 되겠죠.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아직 KBS, MBC, 경향, 한겨레를 그나마 다양하고 좀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매체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조선, 중앙, 동아의 횡포는 아직도 그대로인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최시중씨가 아직 그대로 있고,
방통위 위원들과 방통심의위 위원들의 성향도 정치색이 너무 뚜렷하고,
쇠고기 문제로 국민들 편에 잠깐 섰던 몇몇 보수성향 신문들이 다시 수구적인 모습들을 드러내고,
검찰의 언론사 조사 의지는 좀처럼 약해지질 않고,
게다가 그 배후가 어딘지 (짐작은 가지만) 무척이나 편향된 수사를 하고 있고,
참 암담합니다.
무엇이 희망인가요?
이럴 때마다 나 개인의, 우리들의 힘이 너무 약한 것이 한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렇게까지 국민 다수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는 사람들을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얼마 전 한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보이더군요. (문화일보였던 듯... 기사가 아니라 사설일 수도 있구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KBS가) 정부 정책을 사사건건 비판하는 것은 문제지만'
이런 의식을 가진 기자가 있다는 것이 통탄스럽습니다.
국가기간방송은 국가를 위한 방송이죠.
절대로 정부와 한 정당을, 혹은 대통령을 위한 방송이 아닙니다.
정책이 잘못되었으면 비판해 마땅한 일입니다.
비판받을 만한 정책을 비판한 것을 두고 마치 생트집을 잡는 듯 표현한 그 기자는,
정말 양심도 없고, 신념도 없는, 그야말로 영혼이 없는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언론을 믿어도 될까요?

추신: 그나저나 조능희 책임 프로듀서를 보직해임한 것은 정도가 지나칩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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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참담한 일들이 너무도 많았는데, 제가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터라 글 하나 올리지 못하고 있었네요.
오늘도 고재열 기자님 블로그에 가서 글만 몇개 읽다 나오려고 했는데,
KBS 에 대한 마음 아픈 글은 물론이고, PD 수첩에 대한 글이 제 마음을 후벼파는군요.
바쁠 때일수록 이런 글들을 읽으면 왜 이렇게 흥미롭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지,
그리고 다시금 마음아파 어쩔 줄을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정지민씨 카페에 가서 글을 읽다보니 참으로 글을 안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글쓰는 태도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디서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박식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은 모르고 있군요.
그렇지 않으면 그 속담에 동조를 하지 않거나 말이죠.
저는 참으로 진중권씨와 같은 문체를 싫어합니다.
혼자만이 옳다는 자세, 다른 사람의 주장은 틀렸으며 고려해볼 가치도 없다는 평가절하가 글에 가득하죠.
스스로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믿지 않고 재고해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와 관련해 진중권씨의 항의를 듣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제가 본 그의 모습이니까요.)
정지민씨의 글이 딱 그렇습니다.
다른 주장이 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1%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어떻게든 공격해서 깎아내리려고 하죠.

제가 싫어한다고 해서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글쓰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네요.
토론이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분석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앟은 것은 반박하는 거죠.
절대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깍아내려서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마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독선이 강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죠.

스스로 글쓰는 데 시간이 조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네티즌이 '이런 글 쓰느라 시간 들이지 말라'고 말한 데 대한 답변으로요.
제가 보기에도 글쓰는 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습니다.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마구 풀어내니까요.
한번 정리해보거나 순화한다거나 이런 과정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믿으라는 말인가', '난독증' 운운한다거나 '좀 생각이라는 것도 해보았으면'와 같은 말들이죠.
상대방을 비하하고 협박하는 말들이 여과없이 드러나있습니다.
지금 당장 말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이 없는 내용을 꺼내기도 하구요.
또한 그렇게 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도구로 삼기도 합니다.
그런 여러가지가 겹쳐서 글은 장황하고 논리가 없습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느낌만을 주지요.
읽다 보면 묘하게 수긍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감정적인 말에 휘둘린 것 뿐이죠.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해본 것은 알겠는데, 글을 제대로 쓰는 방법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그런 식의 글쓰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지요.

글쓰는 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전제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글을 잘 썼다면. 내용이 정확하고 전개가 말끔하다면.
그렇지도 않으면서 글을 빨리 썼다는 것은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다 하는 사람이다라고 광고하는 셈이죠.
특히 책임 운운, 처리 운운하면서 상대방을 협박하는 것도요.
예, 분명히 정지민씨는 그런 마음을 감추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정지민씨의 글은 진중권씨의 글보다 훨씬 더 저급입니다.
하대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지적 수준을 들먹이며 조롱하거나, 협박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이왕 글을 시작했으니 suspect 부분과 관계된 오역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정지민씨가 이 부분과 관련해 처음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확실히 아는 것은 몇몇 언론들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검찰의 입장이 바로 suspect 부분을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한 것은 오역이며, 반드시 '걸렸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도 그 부분에 대한 반박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래글 참고)
suspect 부분을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죠.
비록 PD수첩 측에서 이미 오역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작가 김은희씨의 글에서 초벌번역에 본래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되어있었다는 내용을 보고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정지민씨의 초벌번역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더욱) 크게 흥분해서 반박을 했더군요.
그 반박내용이라는 것이 재밌게도 제가 썼던 내용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suspect 는 '그럴 것이라고 강하게 믿을' 때 쓰는 표현이라는 것 말이에요.
맞습니다. 그래서 초벌번역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역도 그 무엇도 아니고, 참 잘된 번역입니다. 100% 직역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지금까지 suspect 부분의 번역에 대해 문제삼았던 분들의 입지가 걱정됐나 보네요.
다시금 초벌번역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방송에서 그렇게 내보내면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무슨 억지입니까?
초벌번역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방송에서도 문제가 없는 게 당연하잖아요?
정지민씨는 앞뒤 문장들을 자르고 그 문장만 내보낼 때는 그렇게 번역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의사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명확하지 않는다는 둥, 실제로 광우병에 걸린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둥,
이런 이유로 번역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죠.

하나하나 얘기해보죠.
앞뒤에 그 주장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원래 나왔는데 PD수첩에서는 잘라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인가요?
앞뒤 문장이 있다면 의사들의 추측을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해도 일부 추측에 불과한 걸로 알아들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발언이 같이 실리지 않을 때는 마치 의사들의 발언을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건가요?
이것이 어떻게 설득력있는 주장인지요?

어떤 의사가 그런 말을 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번역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만약 그런 말을 한 의사가 정말 없었다면 번역 문제가 아니라 그 말 자체를 방송에 내보내서는 안되는 거죠.
그렇지만 리포터가 그렇게 전한 걸로 봐서 그런 발언을 한 의사가 분명히 있다고 믿을 수 있죠.
그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리포터의 발언을 방송에 내보낸 것이니까요.
리포터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정황상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리포터가 거짓을 말했더라도 PD수첩은 그에 대해 일일이 확인하지 않은 아주 작은 책임만을 질 뿐입니다.
번역을 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거죠.

실제로 광우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지 않아서 그렇게 번역하면 안된다구요?
그 문장은 정확히 의사들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고, 적어도 리포터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의사들의 말이 틀리건 말건, 광우병에 실제로 걸렸던 것이든 아니든, 그 문장 자체는 사실입니다.
그 문장을 그렇게 번역해서 방송하는 데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거죠?
정지민씨가 예로 들었듯이 'My house is burning'을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라고 방송할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TV에서 리포터가 'Firemen suspect houses are burning'이라고 했다면,
실제로 불에 타고 있지 않았더라도 '소방수들은 집이 불에 타고 있다고 한다'라고 방송에서 말할 수 있죠.
그 뒤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정정하면 되는 겁니다.
(PD수첩은 그렇게 했죠.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나중에 정정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중요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정지민씨는 일일이 카페에 해명을 했죠.
제 글에 대해서도 해명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쓸모없는 발언, 아무 것도 모르면서 떠드는 사람의 말로 치부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도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친히 반박해준다고 하면 환영하겠습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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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에서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방송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결정을 내린 것은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보셨을 것이고, 저 또한 그 부당함을 짧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관련보도자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15번 보도자료

이 결정에 대해 상세히 반박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대전제로 미국 소고기가 아직 광우병 위험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에 '광우병 위험통제국'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고 하죠? 이는 광우병 위험이 전혀 없는 '광우병 청정지역'이 아니라, 광우병이 발생할 위험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통제라는 용어는 위험발생 가능성을 어느 정도 줄였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국제수역사무국의 인증은 미국 소고기를 아무런 제한없이 수입해도 좋다는 보험증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미국 소고기를 제한없이 수입하기로 결정하였죠. 이 결정이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여러 방편 중의 하나로,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하며 미국 소의 도축 실태는 어떠한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언론 뿐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언론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방송사에서 이를 다루었다는 것은 우리나라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 제작과정에서 실수가 몇가지 드러났지만, 그 실수라는 것은 정말 보잘 것이 없습니다. 심의위에서 지적한 여섯 가지 오역에 대한 논쟁을 먼저 살펴보죠.

1. 'dairy cow'(젖소)를 '이런 소'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말의 앞뒤를 살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의역입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처럼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제작자의 의도와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심의위는 의역을 더욱 확대해석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2. 'could possibly have'를 '걸렸을지도 모르는'이 아니라 '걸렸던'이라고 한 점, 'If she contracted'(만약 걸렸다면)을 생략하고 '어떻게 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 점, 'Doctors suspect Aretha has vCJD'를 '의사들이 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다'가 아닌 '의사들에 따르면 아레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한 점을 들어 심의위는 심각한 오역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가능성이 있는 명제를 확신에 가깝게 오역했다고 지적한 것이죠.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심각한 수준의 오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경우 아레사의 어머니가 얘기한 부분인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입에서 실제 단정적인 표현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걸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아레사의 어머니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의심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suspect'라는 것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의사들은 언제나 '일 것 같다'라고 합니다. 절대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혹시 아닐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번역할 때마다 '걸렸을 것 같다고 합니다'라고 번역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표현해도 의사들의 표현을 걸러 들을 능력이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있습니다.

3. 'could possibly have CJD'라고 아레사의 어머니가 말한 것을 'CJD 가능성'이라고 하지 않고 'vCJD 가능성'이라고 번역한 것은 의도적 왜곡이라고 심의위는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여러번 말했듯이 아레사의 어머니는 'vCJD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실수는 오히려 아레사의 어머니가 했던 것이고, PD수첩은 이를 정정하여 방송한 것 뿐입니다.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심의위입니다.

4. 'When the employees who were charged with animal cruelty were asked'(동물학대 혐의를 받고 있는 인부들에게 물었더니)라는 부분을 '현장책임자에게 (왜 광우병 의심소를 억지로 일으켜 도살하냐고) 물었더니'라고 괄호 부분을 덧붙인 것은, 동물학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사실과 달리 광우병 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보이도록 왜곡한 것이라고 심의위는 주장합니다. 그러나 문장은 문맥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동영상에서 해설은 질문 내용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질문 내용은 '왜 동물을 학대하느냐'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리자가 이렇게 하라고 했다'라고 대답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동물학대에 대한 질문이었다는 심의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질문 내용은 휴메인 소사이어티 측에 문의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으나, '왜 이 소들을 억지로 일으켜서 도살하느냐'는 것일 테죠. '이 소들'이 '광우병 의심소'라는 것을 휴메인 소사이어티 측이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일어나지 못하는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 의심소인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왜곡도 무엇도 아닙니다. 질문이 무언지 모르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을 삽입한 것이며 제대로 된 번역입니다.

다른 쟁점들을 한꺼번에 짚어보겠습니다.

5. 진행자가 실수로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발언한 것은 분명한 실수입니다. 따라서 PD수첩측도 다음 주에 사과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시 사과명령을 내렸을 뿐 아니라, 다시한번 문제를 제기한 심의위는 재심오류의 원칙을 위반한 것입니다.

6. 한국인이 유전자 구조상 광우병 위험에 더 취약하다고 얘기한 것은 충분히 학술적 근거가 있는 내용으로서, 없는 내용을 조작해서 사실인 것처럼 꾸민 것도 아니고, 그 학문적 내용이 의심의 여지가 다분하여 그다지 믿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를 두고 객관성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한 심의위는 객관적 사실을 간과하였습니다.

7. 광우병 위험을 고발하는 방송에서 그 반대쪽 주장에 반드시 힘을 실어주어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쪽 주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심의위는 반대쪽 주장에 우호적인 판단을 하였으므로 오히려 공정성을 위반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이상이 심의위의 결정이 왜 지나치게 가혹한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PD수첩의 방송은 심지어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 조치인 '주의'조차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실수와 오역 몇 가지를 근거로 이와 같은 징계를 내리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처사입니다. 심의위원들의 이념적, 정치적 편향성이 이와 같이 왜곡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심의위는 이번 사태를 철저히 되살펴보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방송통신위원회는 앞으로 있을 재심에서 소속기관인 심의위의 실수를 다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부터는 약간 감정적인 비판도 해보겠습니다. 방통위와 그 산하 심의위는 매우 정치적 색채가 뚜렷합니다. 현재까지의 결정을 지켜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댓글에 대한 결정, KBS의 '뉴스9'에 대한 결정, 그리고 최근 방통위에서 내려진 신태섭 KBS 이사의 자격정지 의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매체에 대해서는 매우 가혹한 기준을 적용하여 과도한 결정을 내리지만, 현 정부를 옹호하는 매체에 대해서는 그 반대로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 방통위와 심의위는 스스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고 있습니다. MBC와 KBS에 대해 적용하는 그 기준을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도 적용해보세요. 설마 신문은 방송과 달리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아마 같은 기준을 모든 매체에 적용한다면 매일 신문지면에는 사과의 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다른 분들의 글들을 링크해보겠습니다.
고재열의 독설닷컴, 'PD수첩 작가 회유하려는 언론사 있었다'
같은 블로그, 'PD수첩이 인정하는 실수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블로그, '광우병 후속편 제작하고 싶다'
같은 블로그, 'PD수첩 PD들이 조중동에 전하는 말'
다른 블로거님들의 글도 조만간 가져다 붙이겠습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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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참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언론계에서 안좋은 소식들이 날아들었네요.

며칠 전에 올린 글이 무색할 정도로 급하게, YTN 사장 추인 주주총회가 열렸다고 하는군요.
절차적 문제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주총에서 구본홍씨를 사장으로 추인했다고 합니다.
절차를 무시한 날치기든 뭐든 간에 그들에게는 해냈다라는 성취감이 있을 것이고,
지켜본 우리들과 특히 YTN 노조 여러분들은 허탈함과 실망감에 가득찼을 것입니다.
이번 구본홍씨의 사장 선임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소리치겠습니다.
구본홍씨가 직접 물러나든지 이명박 대통령이 선임을 취소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두 가지 안좋은 소식이 있었죠.
MBC의 'PD수첩'에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렸으며,
KBS의 '뉴스9'에 대해서도 '주의'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특히 'PD수첩'에 대해서는 과도한 유권해석(공정성과 객관성 문제)과 부실한 근거(일부 오역)를 바탕으로 한
최근 들어 가장 불공정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근거가 부족한 마당에 그 근거조차도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거나 견강부회로 끼워맞췄지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문제는 9명의 위원 중 6명이 대통령 및 여당 추천인사로서,
정치적 색채가 강한 사안에 대해서 과반수 의결을 하게 되면 정치성향에 따라 결정되는 태생적 불합리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2개월간의 결정을 보면 그 행태를 능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지요.

조갑제씨의 'MBC 허가 취소' 발언은 개그 수준입니다.
자신의 독선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그런 글을 기고했다는 것을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언론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을 부끄러워하세요.

우울합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계속 맞서나갑시다.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글을 읽으며 저도 힘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혹시 놓치고 계신 건 없는지, 저도 계속 찾아보겠습니다.
만약 그런 부분이 있으면 좀더 논리정연한 분석도 올려보겠습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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