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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에 대해 두 가지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저는 지금 세계 정세가 FTA를 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유무역을 하는 마당에 혼자서만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버틸 수는 없는 일이지요.
결국 문제는 얼마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느냐겠지요.
지난 번 협상이 아주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내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그 뒷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죠.
더이상 내주지 않고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야 한다는 거죠.

1. 우리 정부의 협상 태도
참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정부는 빨리 비준하려고 난리인 반면,
미국은 오히려 명백한 반대입장을 취하거나 느긋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바마, 클린턴, 펠로시 모두 다 그렇지요.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더 그렇다고 이해하더라도 차이가 너무 확연합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더 손해를 보게 되어있지 않을까요?
협상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런 것이니까요.
미 의회 세입위원회에 있는 랭글 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죠.

"오바마 대통령 돼도 FTA 재협상 안할 것" (YTN 기사)

이걸 듣고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생각은 이런 게 아닐까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부풀려 얘기하고 있다는 거죠.
속된 말로 '뻥카'(bluffing)를 지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어쩔 수 없으니 받아주겠다는 건가요?
그도 아니면 문제가 많으니 재협상이고 뭐고 아예 없던 걸로 하겠다는 건가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간에 미국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에 비하면 우리 정부가 한 행동은 참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쇠고기협상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하나 했지요.
받은 것도 없이 덜컥 쇠고기 수입조건을 크게 완화시켜줬다는 겁니다.
더 큰 실수는 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버티고 있다는 거구요.

사실 쇠고기협상은 FTA의 일부도 아닙니다.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해줬다고 해서, 미국에서 FTA가 비준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죠.
어떤 기자는 우리가 쇠고기협상에서 크게 양보해줬으니 미국도 FTA를 거부할 명분이 약해졌다고 하더군요.
이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이렇게까지 양보해서 FTA를 성사시켜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둘째로 미국이 서로 별개의 사안을 연결시켜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해줄 리가 없습니다.
도덕적으로는 마치 미국이 FTA를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로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가 없는 거죠.
그 때 가서 쇠고기 수입조건을 다시 강화할 수 있겠습니까?
그 대답이 "예"라면 왜 지금 당장 재협상은 안된다는 건지 궁금하군요.

2. 미국의 이상한 논리
위 기사를 보면 오바마나 랭글이나 모두 자동차 무역 불균형을 이야기했다고 하죠.
그 논리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팔린 한국자동차는 70만대인데 한국에서 팔린 미국자동차는 7000대에 불과하다'
이걸로 무역 불균형을 얘기한다면 그야말로 논리학을 배웠는지 묻고 싶습니다.

먼저 미국의 인구는 3억인 반면, 한국은 5천만이 조금 안되는 인구죠.
그리고 정확한 통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미국에서는 거의 1인당 차를 한 대씩 가지고 있죠.
우리나라도 차가 많아졌습니다만, 아직 2인당 한 대 정도에 불과하거나 그보다 안될 것 같습니다.
단순한 추측에 의한 비교라서 신뢰도는 높지 않겠지만, 차가 3억대와 2500만대로 1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100배 차이가 난다며 판매대수로만 얘기하면 사실을 왜곡하는 게 아닐까요?
판매대수로만 비교해서는 안되는 거죠.

두번째로, 무역 불균형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전체 시장을 놓고 봐도 불균형이 있을 수 있는데, 하물며 자동차 시장이야 말할 것도 없죠.
그렇다면 우리도 억지를 한번 써보겠습니다.
현재 컴퓨터 소프트웨어 무역은 매우 심각한 불균형상태에 있습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한국 시장의 대부분을 휩쓸고 있습니다.
워드 프로세서, 백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소프트웨어는 살아남기도 급급한 상황이죠.
그에 비해 한국 소프트웨어는 미국 시장에서 거의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예, 별로 좋지 않은 예였다는 걸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무역 불균형을 이야기하면 이런 오류를 쉽게 범할 수 있지요.

무역장벽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반박해보겠습니다.
미국자동차의 수입관세가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딱히 미국자동차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모든 수입자동차가 동일한 조건이죠.
이건 수입자동차가 사치재라는 견해에 기반한 우리나라의 정책입니다.
(사실 모든 자동차에 특별소비세가 있었죠. 2년전쯤 없어진 걸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군요.)
어느 나라나 그 나라만의 고유한 정책이 있지 않나요?
미국도 의약품에 관해선 FDA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수입 자체를 불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예 수입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무역장벽이죠.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체를 한꺼번에 생각하기 때문에, 부분협상이 아닌 일괄협상을 하고 FTA를 하는 것 아닌가요?
한 쪽에서는 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쪽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딱히 자동차 시장을 꼬집어 무역 불균형을 얘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시장에서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면 FTA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요.

마치며...
지금 한미 FTA를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일부 정치인을 빼고는 고려하지도 않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단지 기사를 보고 생각나는 걸 써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쇠고기 문제가 먼저입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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