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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는 참 기대하고 있던 드라마입니다.
일단 광개토대왕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맘에 들었고, '사신'이 나온다는 것 또한 흥미로웠죠.
그런데 제작중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표절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네요.

일단 밝혀둘 것은, 저는 '바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저기서 표절 주장의 논거만을 보고 말을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아왔던 논거만으로는 표절이라는 주장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가장 먼저 사신(四神)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죠.
사신은 동양권에서 많이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만화에서만도 푸르뫼 작 '사신전'이라는 작품이 있지요.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환상게임'(ふしぎ遊戱) 역시 사신이 등장합니다.
그러니 사신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표절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요.

사신을 의인화했다는 것 또한 '바람의 나라'가 처음은 아닐 것입니다.
앞서 말한 '사신전'과 '환상게임' 또한 사람의 모습을 한 사신들이 나오지요.
게다가 의인법이라는 것은 흔한 표현수단입니다.
유독 사신을 의인화한 것이 독특한 표현수단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사신이 왕을 돕는 설정이 문제인가요?
만약 사신이라는 소재를 사용한다면 누군가를 돕게 되겠지요.
단지 세상밖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신이라면 누가 흥미를 가질까요?
당연히 이야기 속으로 들어와야 할 테고, 그렇다면 그 중심에 주인공이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고대 이야기 속에서라면 당연히 왕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상식적인 설정을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을지요.

사신 개개인의 성격과 개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더군요.
사신의 이미지는 예전부터 어느 정도 고정되어있습니다.
청룡은 지혜롭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쉽게 말하면 조선시대의 영의정과 같은 역할이지요.
백호는 용맹무쌍하고 뭐든지 다 할 것 같은, 대장군과 같은 역할을,
주작은 신비로우면서도 붉음과 관련된 역할을 항상 해왔구요.
현무는 뒤에 숨어서 현명한 판단으로 조언을 하는 역할입니다.
이런 기본으로부터 조금씩 변형을 가하다 보면 비슷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하여 '바람의 나라'만의 독특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몇가지 다른 소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지요.
첫째, 신시로 나아간다는 것은 단군설화를 알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고대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에 걸쳐있던 여러 나라들이 쥬신(고조선)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던 것은
재야사학의 한 내용으로서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둘째,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주몽)으로부터의 유지를 받든다는 것 또한
고구려의 왕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표방했을 하나의 기치요, 상징일 것입니다.
유독 대무신왕(무휼)이, '바람의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닐 것입니다.

셋째, 폭주하는 사신을 그 주인만이 진정시킬 수 있다는 내용 역시 흔한 내용입니다.
딱히 사신이 아니라도 폭주하는 무언가를 막아내는 것은 대체로 주인공이지요.
주인공의 능력을 부각시키기 위한 아주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넷째, 주작의 어린 시절과 발견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바람의 나라'에서는 일족 중에 홀로 살아남는 것은 백호이며,
어린 시절 떠돌며 정체를 숨기던 주작을 현무가 알아본다고 합니다.
'태왕사신기' 스페셜의 내용에 의하면 주작은 두 자매에게 나뉘었고,
부모님이 죽임을 당하고 언니가 화천회에 의해 조종받게 되지만,
주작을 찾아나선 거믈촌 일족이 숨겨진 간난아이, 동생 주작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동생 주작은 아직 자신의 정체도 모르거니와 어린 시절을 떠돌았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요.
게다가 멸문지화를 당한 속에서 홀로 살아남는 이야기는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 활을 쏘는 장면이 '반지의 제왕'과 비슷하다고 일부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흰 머리를 길게 휘날리며 활을 쏘면 표절인가요?
이것은 너무 독창성이 없어서 '반지의 제왕'만의 표현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몇 가지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보았으나,
이것만으로 표절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근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표절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기본 이야기틀부터 일치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군요.
단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이야기거리만을 문제삼는군요.
이런 문제제기라면 앞으로 어떤 작품에서도 사신과 왕의 이야기를 절대 쓸 수 없겠지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드라마를 좀더 보고 나서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요?
아직 표절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덧: 제가 크게 참고한 글은 두 개입니다.
1) 박형준님의 글 (블로그 창천항로)
2) 미래님의 글 (Orbis Optimus)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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