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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틀린 표현에 관한 얘기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졸업한 후로부터 점점 맞춤법에 자신이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야 교과서에 실린 정확한 표현만 보다가, 이젠 온갖 틀린 표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그래도 가능하면 맞춤법을 지키려고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노력을 좀 하고 있어요. 게다가 영어를 자주 쓰다 보면 우리말이 좀 어색해질 때도 있어서 더더욱이요 ^^;

흔히 틀리는 표현 중에 하나가 '치르다'와 '담그다', '잠그다'입니다.

치르다 (O) 치루다 (X)
담그다 (O) 담구다 (X)
잠그다 (O) 잠구다 (X)

이 동사들은 기본이 '으다' 형태이므로 다음과 같이 활용해야 맞겠죠.

치르고, 치러, 치렀는데, 치를, 치른다 (O)
담그고, 담가, 담갔는데, 담글, 담근다 (O)
잠그고, 잠가, 잠갔는데, 잠글, 잠근다 (O)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잘못되었습니다.

치루고, 치뤄, 치뤘는데, 치룰, 치룬다 (X)
담구고, 담궈, 담궜는데, 담굴, 담군다 (X)
잠구고, 잠궈, 잠궜는데, 잠굴, 잠군다 (X)

정확한 표현을 이용한 용례는 다음과 같이 해야겠죠.

시험을 치렀는데,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아.
잘못을 했으면 반드시 죄값을 치러야 한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이젠 별로 없어요.
물에 온몸을 담그니 피곤이 싹 가시는 것 같다.
문을 꽉 잠가라.
단추를 다 잠그는 것은 좀 답답해요.

그런데 이것을 틀리게 쓰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러다가 '치루다'와 '담구다', '잠구다'가 옳은 표현으로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겁니다. 실제로 맞춤법이나 표준어가 실제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뀐 예가 적지 않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아쉬운 것이 '삼가다'와 함께 '삼가하다'를 옳은 표현으로 인정한 것이었어요. '삼가'라는 말에는 몸짓이나 말 따위를 조신하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지요. 그래서 '삼가다'라는 것은 조심해서 하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고, '삼가 하다'라는 것은 조심해서 한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쓰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지니 '삼가하다'를 인정하고 말았지요. 제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삼가하다'는 틀린 표현이었는데, 당시에도 소위 지식인들 사이에 이렇게 잘못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명의로 된 팻말조차 '잔디에 들어가는 것을 삼가합시다'라고 써있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구구절절 길어지고 말았네요. 하기야 말은 원래 변하는 것이고, 조선시대에 쓰이던 말 중에 지금도 그 뜻 그대로 쓰이는 말이 반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까진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도 아직 변하지 않았다면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로 '치르다' 따위와 비슷하게 활용되는 단어들을 열거해보겠습니다.

끄다: 끄고, 꺼, 껐는데, 끌, 끈다
쓰다: 쓰고, 써, 썼는데, 쓸, 쓴다
크다: 크고, 커, 컸는데, 클
굼뜨다: 굼뜨고, 굼떠, 굼떴는데, 굼뜰
예쁘다: 예쁘고, 예뻐, 예뻤는데, 예쁠
움트다: 움트고, 움터, 움텄는데, 움틀, 움튼다
아프다: 아프고, 아파, 아팠는데, 아플
다르다 (ㄹ불규칙): 다르고, 달라, 달랐는데, 다를
지르다 (ㄹ불규칙): 지르고, 질러, 질렀는데, 지를, 지른다

찾다보니, '치르다'는 '-르다'면서 ㄹ불규칙이 아닌 동사네요. 모조리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예를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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