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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에서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방송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결정을 내린 것은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보셨을 것이고, 저 또한 그 부당함을 짧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관련보도자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15번 보도자료

이 결정에 대해 상세히 반박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대전제로 미국 소고기가 아직 광우병 위험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에 '광우병 위험통제국'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고 하죠? 이는 광우병 위험이 전혀 없는 '광우병 청정지역'이 아니라, 광우병이 발생할 위험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통제라는 용어는 위험발생 가능성을 어느 정도 줄였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국제수역사무국의 인증은 미국 소고기를 아무런 제한없이 수입해도 좋다는 보험증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미국 소고기를 제한없이 수입하기로 결정하였죠. 이 결정이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여러 방편 중의 하나로,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하며 미국 소의 도축 실태는 어떠한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언론 뿐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언론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방송사에서 이를 다루었다는 것은 우리나라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 제작과정에서 실수가 몇가지 드러났지만, 그 실수라는 것은 정말 보잘 것이 없습니다. 심의위에서 지적한 여섯 가지 오역에 대한 논쟁을 먼저 살펴보죠.

1. 'dairy cow'(젖소)를 '이런 소'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말의 앞뒤를 살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의역입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처럼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제작자의 의도와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심의위는 의역을 더욱 확대해석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2. 'could possibly have'를 '걸렸을지도 모르는'이 아니라 '걸렸던'이라고 한 점, 'If she contracted'(만약 걸렸다면)을 생략하고 '어떻게 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 점, 'Doctors suspect Aretha has vCJD'를 '의사들이 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다'가 아닌 '의사들에 따르면 아레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한 점을 들어 심의위는 심각한 오역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가능성이 있는 명제를 확신에 가깝게 오역했다고 지적한 것이죠.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심각한 수준의 오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경우 아레사의 어머니가 얘기한 부분인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입에서 실제 단정적인 표현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걸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아레사의 어머니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의심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suspect'라는 것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의사들은 언제나 '일 것 같다'라고 합니다. 절대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혹시 아닐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번역할 때마다 '걸렸을 것 같다고 합니다'라고 번역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표현해도 의사들의 표현을 걸러 들을 능력이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있습니다.

3. 'could possibly have CJD'라고 아레사의 어머니가 말한 것을 'CJD 가능성'이라고 하지 않고 'vCJD 가능성'이라고 번역한 것은 의도적 왜곡이라고 심의위는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여러번 말했듯이 아레사의 어머니는 'vCJD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실수는 오히려 아레사의 어머니가 했던 것이고, PD수첩은 이를 정정하여 방송한 것 뿐입니다.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심의위입니다.

4. 'When the employees who were charged with animal cruelty were asked'(동물학대 혐의를 받고 있는 인부들에게 물었더니)라는 부분을 '현장책임자에게 (왜 광우병 의심소를 억지로 일으켜 도살하냐고) 물었더니'라고 괄호 부분을 덧붙인 것은, 동물학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사실과 달리 광우병 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보이도록 왜곡한 것이라고 심의위는 주장합니다. 그러나 문장은 문맥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동영상에서 해설은 질문 내용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질문 내용은 '왜 동물을 학대하느냐'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리자가 이렇게 하라고 했다'라고 대답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동물학대에 대한 질문이었다는 심의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질문 내용은 휴메인 소사이어티 측에 문의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으나, '왜 이 소들을 억지로 일으켜서 도살하느냐'는 것일 테죠. '이 소들'이 '광우병 의심소'라는 것을 휴메인 소사이어티 측이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일어나지 못하는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 의심소인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왜곡도 무엇도 아닙니다. 질문이 무언지 모르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을 삽입한 것이며 제대로 된 번역입니다.

다른 쟁점들을 한꺼번에 짚어보겠습니다.

5. 진행자가 실수로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발언한 것은 분명한 실수입니다. 따라서 PD수첩측도 다음 주에 사과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시 사과명령을 내렸을 뿐 아니라, 다시한번 문제를 제기한 심의위는 재심오류의 원칙을 위반한 것입니다.

6. 한국인이 유전자 구조상 광우병 위험에 더 취약하다고 얘기한 것은 충분히 학술적 근거가 있는 내용으로서, 없는 내용을 조작해서 사실인 것처럼 꾸민 것도 아니고, 그 학문적 내용이 의심의 여지가 다분하여 그다지 믿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를 두고 객관성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한 심의위는 객관적 사실을 간과하였습니다.

7. 광우병 위험을 고발하는 방송에서 그 반대쪽 주장에 반드시 힘을 실어주어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쪽 주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심의위는 반대쪽 주장에 우호적인 판단을 하였으므로 오히려 공정성을 위반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이상이 심의위의 결정이 왜 지나치게 가혹한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PD수첩의 방송은 심지어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 조치인 '주의'조차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실수와 오역 몇 가지를 근거로 이와 같은 징계를 내리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처사입니다. 심의위원들의 이념적, 정치적 편향성이 이와 같이 왜곡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심의위는 이번 사태를 철저히 되살펴보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방송통신위원회는 앞으로 있을 재심에서 소속기관인 심의위의 실수를 다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부터는 약간 감정적인 비판도 해보겠습니다. 방통위와 그 산하 심의위는 매우 정치적 색채가 뚜렷합니다. 현재까지의 결정을 지켜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댓글에 대한 결정, KBS의 '뉴스9'에 대한 결정, 그리고 최근 방통위에서 내려진 신태섭 KBS 이사의 자격정지 의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매체에 대해서는 매우 가혹한 기준을 적용하여 과도한 결정을 내리지만, 현 정부를 옹호하는 매체에 대해서는 그 반대로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 방통위와 심의위는 스스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고 있습니다. MBC와 KBS에 대해 적용하는 그 기준을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도 적용해보세요. 설마 신문은 방송과 달리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아마 같은 기준을 모든 매체에 적용한다면 매일 신문지면에는 사과의 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다른 분들의 글들을 링크해보겠습니다.
고재열의 독설닷컴, 'PD수첩 작가 회유하려는 언론사 있었다'
같은 블로그, 'PD수첩이 인정하는 실수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블로그, '광우병 후속편 제작하고 싶다'
같은 블로그, 'PD수첩 PD들이 조중동에 전하는 말'
다른 블로거님들의 글도 조만간 가져다 붙이겠습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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