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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기사를 한꺼번에 보았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대한통운 전 사장이 수만달러를 건넸다고 하는 기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화가 났는데,
노회찬 전 의원이 X 파일을 폭로한 것에 대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는 기사를 보며 다행이란 맘이 들더군요.
각각 다른 글로 이 기분을 표시하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묘하게 관련이 되어있더군요.

한 사람은 의혹이 있는 걸로 검찰에서 발표를 했고 언론이 보도를 한 사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의혹을 폭로해서 검찰에서 기소를 했고, 의혹 폭로가 정당했다고 법원이 손을 들어준 것이죠.
왠지 이 사람을 감싸려니 저 사람이 맘에 걸리고, 저 사람을 감싸려니 이 사람을 몰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두 분 다 제가 존경하는 정치인이고 믿는 분들이기 때문에 마치 진퇴양난이 된 것 같았습니다.
생각없이 무턱대고 감싸다가는 모순에 빠질 것 같더군요.
그래서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무엇일까요?
의혹 폭로가 정당한가? 만약 이것만이 문제의 전부라면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논란에서 반대 입장에 선 것이 됩니다.
이것만 보는 것이 옳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의혹 폭로의 정당성에 대해 일관된 기준을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두 문제에는 모두 검찰이 연루되어있고, 검찰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출처: 연합뉴스, 2차출처: 다음뉴스

의혹 폭로가 항상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얼마인지, 공익 목적인지, 방법이 정당한지,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없는지 종합적으로 봐야겠죠.
지금까지 거짓 의혹을 폭로해서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사례가 많았죠.
이게 사실로 드러나도 큰 처벌을 받지 않은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폭로를 통해 이득은 얻었지만 그로 인한 책임은 지지 않은 것이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 이대로 놔두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번 한명숙 전 총리에 관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치인이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사실이 아닐 경우, 증거 하나 없이 증인 진술만 믿고 의혹을 폭로한 기관들...
검찰과 조선일보 등 언론사는 이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져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
허울좋은 이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누구나 이 말을 가져다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쓸 수 있습니다.
진실로 필요한 것은, 알 권리를 거론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여기엔 분명히 기자들의 특종 본능과 도덕성 사이, 균형 잡힌 자세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봐야겠죠.
이번 경우는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점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라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네요.


출처: 경향신문

그렇다면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 경우는 X-파일이라는 증거가 있었고, 이를 사실로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죠.
그리고 자칫하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을 위기였습니다.
이에 대해 수사의지를 촉구하기 위해 언론에 공개한 것은 필요한 행동이었다고 봐야겠습니다.
단지 검찰과 삼성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으니까요.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대로 흐지부지 끝내지 말고 끝까지 파헤쳐보라'는 주장이니까요.


출처: 뉴시스, 2차출처: 다음뉴스

앞에서 말씀드린 검찰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죠.
검찰이 해야 할 일은, 죄가 될 만한 사실이 있는지 밝혀내어 기소하고 증거에 의거해 법정에서 논증하는 것입니다.
판결은 법원에서 판사가, 혹은 판사들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내리는 것이죠.

그런데 요새는 검찰이 언론에 수사 정보를 과도하게 흘립니다. 매우 잘못된 행동이죠.
검찰이 언론에 제공해야 할 정보는, 기소할 것인지 않을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가 전부입니다.
법원에서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검찰이 다른 어느 정보도 외부로 발설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무죄추정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여론을 움직여서, 법정에 서기도 전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무죄추정원칙에 위배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계속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도 그러했고, 이번 대한통운 전 사장 수사에서도 그렇습니다.
수사 중 나온 말을 왜 언론에 공표를 하나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100% 확실한 사실이라 해도 발설하면 안될 것을, 증거도 없이 외부에 유출하다니 더더욱 안될 말입니다.


출처: 연합뉴스, 2차출처: 다음뉴스

노회찬 전 의원의 행동은 이와 다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검찰이 의혹이 있는 사건에 대해 수사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었죠.
다시 말해 검찰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검찰에게는 기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누가 옆에서 하라, 하지 말라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윤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열심히 수사해야 할 사건과 덜 열심히 해도 되는 사건은 있겠지요.
검사들과 삼성에 대한 수사는 오히려 열심히 수사했어야 할 사건이 아닌가요?

그래서 노회찬 전 의원이 나섰던 것입니다.
제발 한번 수사해보라구요.
이렇게 자신이 기소를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의혹을 폭로한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니까 일반 국민보다는 이런 의혹을 폭로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판단으로요.
지명도가 높아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은 데다가,
국회의원이라는 국가기관이 다른 국가기관인 검찰을 견제한다는 명분도 있었으니까요.

요약하자면,
의혹 폭로는 사실에 의거해서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검찰이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검찰은 수사를 열심히 하는 데 그 역할을 다 해야 하고, 또 그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그 의무를 게을리했던 경우에 대해 수사의지를 촉구했던 노회찬 전 의원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것은
법리적인 판단 뿐 아니라 위와 같은 역학관계에서 살펴봐도 좋은 판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론 환영합니다.
찬성 글도 환영합니다 ^^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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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에 올라온 기사를 다음에서 읽었습니다.

이데일리, "서머타임, 부활... 내년 4월부터 1시간씩 앞당긴다"

이건 참 기가 찹니다.
써머타임, 도입한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꼭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절실하게 말려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써머타임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 쯤, 열거해도 되지 않겠어요?

먼저, 써머타임이 불러올 혼란을 생각해보죠.
매년 두번씩, 시계를 한시간씩 늦추고 당기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요샌 디지털 시계, 특히 컴퓨터나 텔레비젼, 전화기에 달린 시계를 많이 쓰기 때문에 좀 나을지도 모르지만,
바뀐 시간을 몰라서 헤매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체리듬을 고려해본다면, 갑자기 한시간씩 빨리 일어나야 하거나 한시간씩 늦게 일어나야 하는 일이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나요?

가벼운 문제로, 기록과 관련해서도 혼란이 있을 겁니다.
한 시간 당겨야 하는 시간에, 같은 시각이 두번 반복되겠죠?
이 때 일어나는 일의 발생시각을 기록할 때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세번째로, 우리나라는 동경 124도에서 132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 동경(東京)표준시를 쓰고 있습니다.
즉, 동경 135도에서 해가 머리 위에 떴을 때, 우리나라도 12시가 되는 셈인데요.
다시 말하면 우리 머리 위에 해가 오면, 우리나라는 보통 12시 30분입니다.
춘분과 추분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아침 6시 30분에 해가 떠서 12시 30분에 한낮이 되고 저녁 6시 30분에 해가 지죠.
우리는 이미 30분씩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셈입니다.
여름에 다시 1시간을 당긴다면 우리는 1시간 30분씩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야 하는 거죠.
사람의 생활이 해와 맞춰 진행되는 게 정상이라고 한다면 1시간 30분씩이나 앞당긴는 건 너무 무리가 아닌가요?

그리고 기사에서 제시된 경제효과 중에 의문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4월부터 9월까지 전력소비량이 감소한다는 것까지는 그럴 듯합니다만,
출퇴근시간의 분산과 교통사고 감소는 어디에 근거하는 것인지요?
시간을 일괄적으로 한시간씩 앞당기는데 출퇴근시간이 왜 분산되나요?
교통사고 감소도 출퇴근시간이 분산된다는 가정에 기초하여 얻은 결론이기 때문에 의심스럽고요.
이것이 서울대 경제연구소에서 내놓은 결과라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잘 아는 교수님들께서 과연 이런 주장을 하실까 생각해보니 좀 허무합니다.

비경제효과를 읽을 때는 웃음이 나올 뻔했습니다.
써머타임이 개인의 생활패턴을 건강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니 도대체 어떤 논리에 의해 그렇게 되나요?
범죄는 왜 감소하고, 범죄에 대한 우려는 왜 감소하나요?
일찍 일어나면 범죄가 감소하나요? 이게 그럴 듯한 논리인가요?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써머타임 시행으로 인해 만약 국민들이 더 피곤해하고 쉽게 짜증을 낸다면 오히려 능률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혹시 범죄가 더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주장에 제대로 반박할 수 있나요?

써머타임의 유일한 효과는 무엇인지 맞춰볼까요?
여름에도 미국과 시차가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써머타임을 시행하고 있으니까요.
그것 외에 다른 효과가 있으면, 제가 납득할 만한 이유와 함께 제시해주세요.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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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에 대한 역사관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앞의 두 글,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일관성 결여: 식민지 근대화론에 부쳐"과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일관성 결여: 위안부 문제"를 봐주세요.

요새는 신문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를 일컬을 때도 "미북"이라는 용어가 보이더군요.
정말 이승만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동포가 먼저라는 생각에 "북미", "북일"이라는 표현을 써왔는데,
올해부터 심심치 않게 "미북관계"라든지 "미북간 회담" 같은 표현들을 볼 수가 있네요.
참 씁쓸합니다.

3. 뉴라이트는 과거를 신경쓰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웃음부터 나옵니다.
말은 옳습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어봐야 떡 하나조차 나오질 않습니다.
앞으로 잘먹고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그러나 뉴라이트가 이 말을 할 때는 항상 일본을 대상으로 할 때입니다.
일본이 과거에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신경쓰지 말자고 합니다.
오래묵은 이야기를 꺼내봐야 미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앞으로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자고 합니다.
(하긴 제가 존경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런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먼저 이 주장에 대한 반박부터 해볼까요?
일본의 과거에 대해서만 신경쓰고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거의 없을 겁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현재에 대해 신경쓰고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심지어 과거를 미화하고 왜곡하는 것을 못참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미 과거의 잘못을 반성했다면 이렇게 질질 끌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이 심지어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의 현재 행동에 사람들은 실망하는 거죠.
뉴라이트는 왜 이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그런데 왜 일본에 대해서만 이런 말을 하나요?
미국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봅시다.
미국이 과거에 우리나라를 어떻게 대했는지 신경쓰지 말고 미래의 이익에 충실하자구요.
미국이 6.25 때 우리나라를 크게 도와줬던 사실을 이젠 더이상 신경쓰지 말자구요.
우리나라의 이익에 미국이 도움이 되는지 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미국과 관계를 축소할 수도 있다구요.
왜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건가요?

아하, 잘못은 용서하고 은혜는 잊지 않는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한 것인가요?
좋습니다.
공자님 말씀, 부처님 말씀, 예수님 말씀 모두 이런 것을 권장하고 있지요.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잘못은 깨끗이 용서하고,
미국이 우리에게 베풀어줬던 은혜는 두고두고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앞만 쳐다봅시다.
미국과는 조금 손해보더라도 너무 크게 손해보는 것만 아니면 해달라는 대로 해줍시다.
(그래도 광우병 걸린 소고기는 좀 부담스럽네요.)

그럼 북한은 어떻게 하나요?
북한이 우리에게 잘못한 게 있나요?
예, 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다지만 6.25를 일으켰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요.
국군포로를 단 한번도 송환한 적이 없고, 6.25 당시 유골 탐색에도 미온적이며, 몇년전까지도 서해에서 전투를 일으켰죠.
이제는 용서해줄까요?
그럽시다. 일본을 용서해주듯이 다 용서해줍시다!
앗, 안된다구요?
왜죠? 북한을 용서하고 이제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보면 어떨까요?
북한은 다르다구요?
북한이 잘못을 인정하고 과거를 반성하며 바람직한 대화상대가 될 때까진 입도 뻥끗하지 않겠다구요?

이것 정말 곤란하네요.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는지요?
그럼 북한이 우리에게 잘해줬던 것을 떠올려봅시다.
70년대 우리나라가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식량원조를 해준 것을 기억하나요?
때때로 일본과 독도 문제로 다툴 때도 우리나라 편을 들어줬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이런 작은 은혜도 간과할 수는 없지요.
북한에 조금 손해보더라도 너무 무리한 부탁만 아니면 들어줄까요?
그렇게 하죠. 미국에 하듯 한번 통크게 인심써봅시다!
앗, 안된다구요?
왜죠? 북한에 졌던 작은 은혜를 갚지 않을 건가요?
지난 10년간 이자까지 쳐서 다 갚고도 이미 남았다구요? 더이상 할 능력도, 인내심도 다 닳았다구요?
북한이 먼저 뉘우치고 엎드려 부탁할 때까지 손도 내밀지 않겠다구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너무 일관성이 없는 행동 아닌가요?
일본이나 미국이나 북한이나, 모두 우리나라의 경쟁상대입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판단해야지요.
역사의 교훈을 위해 과거를 단죄하되, 현재를 냉철히 판단하고, 미래의 가치를 위해 손을 잡고 끊어야 합니다.
상대가 어느 나라인가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면 곤란하지요.
뉴라이트, 당신들의 판단기준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친일, 무조건 친미, 하지만 무조건 반북인가요?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다음 글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역사관에 대해 떠오르는 게 있으면 또 써보겠습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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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의 역사관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앞글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일관성 결여: 식민지 근대화론에 부쳐"부터 봐주세요.

2. 뉴라이트는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이고 민간에 의해 운영되었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저도 뉴라이트 회원의 모두가 이에 대해 동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안병직씨와 이영훈씨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한 명은 전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다른 한 명은 현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입니다.
제가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모든 경제학자가 이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경제사학자 중에서도 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왜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지 참 궁금하지요?
상식적으로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말입니다.
그들의 근거는 하나입니다.
일제시대에 기록된 문서입니다.
아하, 문서에 기록이 남아있었군요!
그렇다면 더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문서에 기록된 것들은 모두 사실이고 한치의 틀림도 없으니까요!!!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문서를 그대로 믿을 수가 있는지요?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입니다.
이긴 사람이 가능한 한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대로 - 기록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축소할 수도,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있는 사실을 -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없던 사실까지 만들어 기록할 수도 있는 겁니다.
역사학자라면 이런 부분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삼국지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왕윤이 동탁의 무리를 내쫓은 뒤 동탁에게 빌붙어 있던 채옹에 대한 처결을 명하면서
'지난 날 효무제께서 사마천을 죽이지 않고 사기를 짓게 했더니 효무제를 비방하는 글을 남겼다'라고 말하지요.
말하자면 역사서는 주관이 어떻게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마천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썼다면 효무제에 대한 칭찬이 올라올 수도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일본이 남긴 기록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쓰여져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실제로는 강제동원되었고 일본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의심해보고, 근거를 찾아봐야 합니다.

정말 객관적으로 쓰여져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조차 정부의 정책과 실제 운용실태는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한때 우리 군에서 병사들끼리 서로 존댓말쓰기를 명령한 적이 있습니다.
군 최상위 정책집행자들의 결정이었지요.
당연히 문서로 기록되었고 모든 부대에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모든 부대에서 지켜졌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를 강제하고 운용실태를 보고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좀더 강하게 감시할 테지만 실제로 잘 지켜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잘 되고 있다는 허위보고를 올리겠지요. 그렇다면 이것도 문서로 남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문서들은 실제와 다른 거짓을 담고 있습니다.

같은 상황이 종군위안부에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일본정부가 이를 불법으로 하고 군부에 의한 운영은 금지했다고 해도,
최전선에서 군을 통솔하는 지휘관들이 그 필요성을 느꼈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위안소를 설치하려 했을 겁니다.
일본정부가 불법으로 하면 할수록 위안소 설치는 민간과 자율을 더더욱 가장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과 강제가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를 일본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죠.
종군위안부 기록에 관해서 일본 문서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사실을 가장해서 거짓으로 썼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문서가 사실이고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위안소를 불법으로 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군에 의해 강제로 설치되고 운영됐을지도 모르며, 이럴 경우에도 일본 정부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문서가 아니라 실제 어떻게 운용되고 있었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운용실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조사를 해야 할까요?
이것은 일본 문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서 찾아야 합니다.
실제 일본군에서 이와 관련해 일했던 사람들의 증언.
강제로 끌려가서 위안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증언.

뉴라이트는 오히려 이렇게 반박합니다.
그 시대에 그런 일을 겪었던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과연 그들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이죠.
왜 그들의 말은 믿지 못하면서 일본 정부의 문서는 그대로 믿는 건가요?
누구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나요?
일본 정부는 저지른 잘못을 가려야 하는 입장에 있으니 거짓말을 할 유인이 있지만,
강제집행과 운영에 종사했던 사람들이나 강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유인이 없습니다.
그들은 없던 사실을 꾸며내어 이득을 볼 여지가 없기 때문이죠.
누구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나요?
왜 일본 정부의 문서만을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는 건가요?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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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보수인사들과 보수단체들이 힘을 얻으면서 여러 우려되는 일들이 벌어지네요.
그 중 하나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보수인사들의 역사관 강연이죠.
특히 서울시 교육감으로 선출된 공정택씨는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에게 강연을 하도록 주관했다지요?
겉으로는 균형된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진보인사의 강연은 주관은 커녕 후원도, 허용도 할 수 없다는 자세를 보면 표리부동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 뉴라이트의 역사관이 어떤지 한번 가볍게 살펴보죠.

1. 그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했지만 그 동안의 정책으로 인해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과연 어떤 정책이 우리나라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나요?
공장과 사회간접자본 등 경제시설?
이건 주로 이북지역에 집중이 되어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혜택을 별로 받지 못했죠.
그나마 있던 것들도 수탈 목적으로 지어진 것들이지 우리나라를 진정 발전시킬 목적은 아니었던 겁니다.

교육시설의 확대 및 고등교육 기회 제공?
그들의 교육은 사실 세뇌목적이었죠.
뉴라이트가 그토록 비난하는 (사실 저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찬양 및 세뇌와 뭐가 다른가요?
일본제국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고, 이에 따른 역사왜곡도 서슴지 않았지요.
우리글과 우리말, 우리 문화를 모두 말살하려고 하고, 그것을 다른 걸로 대체하려고 했지요.

어떤 사람들은 목적과 다르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참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이었지만, 결국 신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거죠.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그것을 운반하기 위한 시설들이었지만, 나중에는 경제개발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좋습니다. 객관적으로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죠.
그런데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나요?
이건 마치 나를 괴롭히는 친구에게 복수하려고 힘을 길러 일인자가 되었다면, 그 친구에게 고마워하라는 얘기 같네요.
설마 그런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그냥 고마워하지는 말고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끝내려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사실을 밝히는 것이 뉴라이트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들리네요.
그렇다면 왜 과거사를 밝히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그토록 반대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친일을 했고 독재시대에 어떤 잘못들이 횡행했는지, 군의 암흑기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왜 알고 싶지 않은가요?

어떤 보수인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까짓 걸 밝혀서 무얼 하느냐구요.
과거의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지금 우리의 삶에 바뀌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구요.
이와 같은 인식은 역사를 왜 배우는지에 대한 통찰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지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어떤 것이 잘못된 행동이고 어떤 것이 바른 행동인지를 알게 되지요.
누가 친일행동을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친일이었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그 기준을 바로세워야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더 주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안에 따라서 일관성 없이 의견을 내놓는 것이 참 진실성 없어 보입니다.
차라리 친일본단체라고 툭 터놓고 이야기하면, 욕은 하겠지만 일관성 없다고 비판하지는 않겠지요.
마치 아닌 것처럼 위장하려니 일관성없는 의견들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요?

여기까지 뉴라이트가 제 의견에 동의해준다면, 일단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는 합의를 했군요.
일본이 식민지가 된 한반도에 실행한 정책들이 부분적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 말이죠.
그렇지만 아직 평가가 남았습니다.
그 정책의 잘못된 점은 분명히 눈에 보입니다. 자유를 빼앗고 경제와 문화 전반에 큰 피해를 주었지요.
부분적이나마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여러 보수인사들이 만약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못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식민지가 되기 전 우리나라의 역량이 부족했다고 평하고,
다른 사람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으면 더 큰 수탈을 겪고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적었을 거라고 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근거가 희박하죠.

저도 주장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시에 이미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훨씬 발전했을 거라구요.
이렇게 나라가 둘로 분단되지 않았을 테고, 북한과의 대치로 인해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겠지요.
일본말과 일본글, 잘못된 역사를 배우느라 허비했던 36년을 좀더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겠지요.
지금처럼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뉴라이트와 이처럼 비생산적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됐을 테지요.

어떤가요?
아직도 저를 설득시킬 만한 근거가 남아있는지요?
정말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것이 우리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지요?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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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부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새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죠?
알고 보니 16대 국회가 끝나갈 때쯤 해서 이미 한나라당 국회의원 십여명이 건국절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더군요.
저도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광복절'이라는 명칭은 참 좋지만, 앞으로 언제까지고 이를 기념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만년 후까지도 독립을 기념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적당한 시기가 언제일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래도, 독립 후 100년쯤 지나면 '광복절'보다는 다른 명칭을 쓰는 게 낫겠다고요.
그 때 다른 명칭으로 무엇을 생각해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건국한 날'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찔합니다.
위험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눈치챘습니다.
내가 하고 있던 생각과 똑같은 내용을 친일 숭미 반민족 뉴라이트에서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이에요.
(이렇게 깎아내리는 표현을 블로그에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그 단체의 성격의 90%인데 말이죠.)

제 생각 중에 이 부분은 옳았으면 좋겠습니다.
2050년쯤 되면 더이상 독립을 기념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아니 그보다는 독립 후 100년이 지난 후에도 독립을 기념해야 된다면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나라가 전날의 상처를 말끔히 지우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 되어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독립 10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한 후, 자연스럽게 우리 머리 속에서 잊혀져가면 제일 좋을 듯합니다.
더이상 우리 가슴 속에 아무런 응어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면요.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고 진정한 이웃나라로서 거듭나는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으로선 참 불가능해보이지만, 앞으로 40년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하지만 건국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건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체제의 공화국이 탄생한 것은 그 날이 맞습니다.
초대 대통령도 그 날 취임을 했고, 세계 만방에 나라이름을 알린 것도 그 날이죠.
하지만 대통령 중심제로 체제를 바꿨다고 해서 그 전에 있던 '대한민국'이 사라져야 하나요?
1919년 4월 13일에 이승만씨를 수장으로 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때는 대통령제였죠. 몇년 뒤 김구 주석을 중심으로 한 내각제로 바뀌었고요. Jeff님 감사합니다.)
실질적인 통치권도, 제대로 된 법 체계도 없고, 심지어는 정부조직을 채울 만한 인원도 부족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입니다.
엄연히 존재했던 나라를 역사 속에 파묻고, 마치 48년부터 나라가 존재했던 것처럼 포장하겠다구요?
그렇다면 남의 국호를 훔쳐쓰는 것밖에 더되겠습니까?

자랑스럽게 선포합시다.
우리나라는 1919년 4월 13일에 건국되었다고요.
이미 헌법에도 명시해두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말이죠.
즉, 우리나라의 정통성은 1919년 4월 13일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고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가 업무를 시작한 1948년 8월 15일이 아니고요.
정히 건국절을 기리고 싶으면 4월 13일로 합시다.
우리나라는 건국 89주년을 맞았고, 연호를 쓴다면 '민국 90년'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세운 개천절 10월 3일과 함께 대한민국이 세워진 4월 13일을 기념해야 합니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고, 우리나라의 승전기념일이고, (이 개념에 대해서는 현경병 의원의 말을 따왔습니다.)
독립 후 새 정부수립일이고, 일본의 패전일입니다.
분명히 누군가의 생일일 테고, 결혼기념일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건국일 혹은 건국절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8월 15일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동을 당장 그만두기 바랍니다.

수정: 임시정부가 세워진 날은 1919년 4월 13일입니다. 제가 신문기사 몇개만 보고 4월 11일로 착각하여 글을 잘못 썼으나 인터넷별장통신님의 글을 비롯하여 다시 검색을 해보니 4월 13일이 맞는 날짜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인터넷별장통신님 감사합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부정확한 내용을 글로 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게요.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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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참담한 일들이 너무도 많았는데, 제가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터라 글 하나 올리지 못하고 있었네요.
오늘도 고재열 기자님 블로그에 가서 글만 몇개 읽다 나오려고 했는데,
KBS 에 대한 마음 아픈 글은 물론이고, PD 수첩에 대한 글이 제 마음을 후벼파는군요.
바쁠 때일수록 이런 글들을 읽으면 왜 이렇게 흥미롭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지,
그리고 다시금 마음아파 어쩔 줄을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정지민씨 카페에 가서 글을 읽다보니 참으로 글을 안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글쓰는 태도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디서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박식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은 모르고 있군요.
그렇지 않으면 그 속담에 동조를 하지 않거나 말이죠.
저는 참으로 진중권씨와 같은 문체를 싫어합니다.
혼자만이 옳다는 자세, 다른 사람의 주장은 틀렸으며 고려해볼 가치도 없다는 평가절하가 글에 가득하죠.
스스로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믿지 않고 재고해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와 관련해 진중권씨의 항의를 듣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제가 본 그의 모습이니까요.)
정지민씨의 글이 딱 그렇습니다.
다른 주장이 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1%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어떻게든 공격해서 깎아내리려고 하죠.

제가 싫어한다고 해서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글쓰는 자세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네요.
토론이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분석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앟은 것은 반박하는 거죠.
절대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깍아내려서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마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독선이 강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죠.

스스로 글쓰는 데 시간이 조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네티즌이 '이런 글 쓰느라 시간 들이지 말라'고 말한 데 대한 답변으로요.
제가 보기에도 글쓰는 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습니다.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마구 풀어내니까요.
한번 정리해보거나 순화한다거나 이런 과정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믿으라는 말인가', '난독증' 운운한다거나 '좀 생각이라는 것도 해보았으면'와 같은 말들이죠.
상대방을 비하하고 협박하는 말들이 여과없이 드러나있습니다.
지금 당장 말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이 없는 내용을 꺼내기도 하구요.
또한 그렇게 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도구로 삼기도 합니다.
그런 여러가지가 겹쳐서 글은 장황하고 논리가 없습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느낌만을 주지요.
읽다 보면 묘하게 수긍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감정적인 말에 휘둘린 것 뿐이죠.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해본 것은 알겠는데, 글을 제대로 쓰는 방법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그런 식의 글쓰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지요.

글쓰는 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전제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글을 잘 썼다면. 내용이 정확하고 전개가 말끔하다면.
그렇지도 않으면서 글을 빨리 썼다는 것은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다 하는 사람이다라고 광고하는 셈이죠.
특히 책임 운운, 처리 운운하면서 상대방을 협박하는 것도요.
예, 분명히 정지민씨는 그런 마음을 감추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정지민씨의 글은 진중권씨의 글보다 훨씬 더 저급입니다.
하대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지적 수준을 들먹이며 조롱하거나, 협박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이왕 글을 시작했으니 suspect 부분과 관계된 오역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정지민씨가 이 부분과 관련해 처음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확실히 아는 것은 몇몇 언론들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검찰의 입장이 바로 suspect 부분을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한 것은 오역이며, 반드시 '걸렸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도 그 부분에 대한 반박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래글 참고)
suspect 부분을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죠.
비록 PD수첩 측에서 이미 오역이라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작가 김은희씨의 글에서 초벌번역에 본래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되어있었다는 내용을 보고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정지민씨의 초벌번역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더욱) 크게 흥분해서 반박을 했더군요.
그 반박내용이라는 것이 재밌게도 제가 썼던 내용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suspect 는 '그럴 것이라고 강하게 믿을' 때 쓰는 표현이라는 것 말이에요.
맞습니다. 그래서 초벌번역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역도 그 무엇도 아니고, 참 잘된 번역입니다. 100% 직역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지금까지 suspect 부분의 번역에 대해 문제삼았던 분들의 입지가 걱정됐나 보네요.
다시금 초벌번역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방송에서 그렇게 내보내면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무슨 억지입니까?
초벌번역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방송에서도 문제가 없는 게 당연하잖아요?
정지민씨는 앞뒤 문장들을 자르고 그 문장만 내보낼 때는 그렇게 번역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의사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명확하지 않는다는 둥, 실제로 광우병에 걸린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둥,
이런 이유로 번역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죠.

하나하나 얘기해보죠.
앞뒤에 그 주장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원래 나왔는데 PD수첩에서는 잘라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인가요?
앞뒤 문장이 있다면 의사들의 추측을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해도 일부 추측에 불과한 걸로 알아들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발언이 같이 실리지 않을 때는 마치 의사들의 발언을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건가요?
이것이 어떻게 설득력있는 주장인지요?

어떤 의사가 그런 말을 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번역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만약 그런 말을 한 의사가 정말 없었다면 번역 문제가 아니라 그 말 자체를 방송에 내보내서는 안되는 거죠.
그렇지만 리포터가 그렇게 전한 걸로 봐서 그런 발언을 한 의사가 분명히 있다고 믿을 수 있죠.
그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리포터의 발언을 방송에 내보낸 것이니까요.
리포터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정황상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리포터가 거짓을 말했더라도 PD수첩은 그에 대해 일일이 확인하지 않은 아주 작은 책임만을 질 뿐입니다.
번역을 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거죠.

실제로 광우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지 않아서 그렇게 번역하면 안된다구요?
그 문장은 정확히 의사들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고, 적어도 리포터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의사들의 말이 틀리건 말건, 광우병에 실제로 걸렸던 것이든 아니든, 그 문장 자체는 사실입니다.
그 문장을 그렇게 번역해서 방송하는 데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거죠?
정지민씨가 예로 들었듯이 'My house is burning'을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라고 방송할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TV에서 리포터가 'Firemen suspect houses are burning'이라고 했다면,
실제로 불에 타고 있지 않았더라도 '소방수들은 집이 불에 타고 있다고 한다'라고 방송에서 말할 수 있죠.
그 뒤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정정하면 되는 겁니다.
(PD수첩은 그렇게 했죠.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나중에 정정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중요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정지민씨는 일일이 카페에 해명을 했죠.
제 글에 대해서도 해명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쓸모없는 발언, 아무 것도 모르면서 떠드는 사람의 말로 치부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도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친히 반박해준다고 하면 환영하겠습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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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에서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방송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결정을 내린 것은 뉴스를 통해서 많이 보셨을 것이고, 저 또한 그 부당함을 짧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관련보도자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15번 보도자료

이 결정에 대해 상세히 반박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대전제로 미국 소고기가 아직 광우병 위험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에 '광우병 위험통제국'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고 하죠? 이는 광우병 위험이 전혀 없는 '광우병 청정지역'이 아니라, 광우병이 발생할 위험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통제라는 용어는 위험발생 가능성을 어느 정도 줄였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국제수역사무국의 인증은 미국 소고기를 아무런 제한없이 수입해도 좋다는 보험증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미국 소고기를 제한없이 수입하기로 결정하였죠. 이 결정이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여러 방편 중의 하나로,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하며 미국 소의 도축 실태는 어떠한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언론 뿐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언론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방송사에서 이를 다루었다는 것은 우리나라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 제작과정에서 실수가 몇가지 드러났지만, 그 실수라는 것은 정말 보잘 것이 없습니다. 심의위에서 지적한 여섯 가지 오역에 대한 논쟁을 먼저 살펴보죠.

1. 'dairy cow'(젖소)를 '이런 소'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말의 앞뒤를 살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의역입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처럼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제작자의 의도와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심의위는 의역을 더욱 확대해석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2. 'could possibly have'를 '걸렸을지도 모르는'이 아니라 '걸렸던'이라고 한 점, 'If she contracted'(만약 걸렸다면)을 생략하고 '어떻게 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 점, 'Doctors suspect Aretha has vCJD'를 '의사들이 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다'가 아닌 '의사들에 따르면 아레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한 점을 들어 심의위는 심각한 오역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가능성이 있는 명제를 확신에 가깝게 오역했다고 지적한 것이죠.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심각한 수준의 오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경우 아레사의 어머니가 얘기한 부분인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입에서 실제 단정적인 표현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걸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아레사의 어머니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의심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suspect'라는 것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의사들은 언제나 '일 것 같다'라고 합니다. 절대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혹시 아닐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번역할 때마다 '걸렸을 것 같다고 합니다'라고 번역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걸렸다고 합니다'라고 표현해도 의사들의 표현을 걸러 들을 능력이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있습니다.

3. 'could possibly have CJD'라고 아레사의 어머니가 말한 것을 'CJD 가능성'이라고 하지 않고 'vCJD 가능성'이라고 번역한 것은 의도적 왜곡이라고 심의위는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여러번 말했듯이 아레사의 어머니는 'vCJD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실수는 오히려 아레사의 어머니가 했던 것이고, PD수첩은 이를 정정하여 방송한 것 뿐입니다.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심의위입니다.

4. 'When the employees who were charged with animal cruelty were asked'(동물학대 혐의를 받고 있는 인부들에게 물었더니)라는 부분을 '현장책임자에게 (왜 광우병 의심소를 억지로 일으켜 도살하냐고) 물었더니'라고 괄호 부분을 덧붙인 것은, 동물학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사실과 달리 광우병 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보이도록 왜곡한 것이라고 심의위는 주장합니다. 그러나 문장은 문맥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동영상에서 해설은 질문 내용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질문 내용은 '왜 동물을 학대하느냐'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리자가 이렇게 하라고 했다'라고 대답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동물학대에 대한 질문이었다는 심의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질문 내용은 휴메인 소사이어티 측에 문의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으나, '왜 이 소들을 억지로 일으켜서 도살하느냐'는 것일 테죠. '이 소들'이 '광우병 의심소'라는 것을 휴메인 소사이어티 측이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일어나지 못하는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 의심소인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왜곡도 무엇도 아닙니다. 질문이 무언지 모르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을 삽입한 것이며 제대로 된 번역입니다.

다른 쟁점들을 한꺼번에 짚어보겠습니다.

5. 진행자가 실수로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발언한 것은 분명한 실수입니다. 따라서 PD수첩측도 다음 주에 사과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시 사과명령을 내렸을 뿐 아니라, 다시한번 문제를 제기한 심의위는 재심오류의 원칙을 위반한 것입니다.

6. 한국인이 유전자 구조상 광우병 위험에 더 취약하다고 얘기한 것은 충분히 학술적 근거가 있는 내용으로서, 없는 내용을 조작해서 사실인 것처럼 꾸민 것도 아니고, 그 학문적 내용이 의심의 여지가 다분하여 그다지 믿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를 두고 객관성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한 심의위는 객관적 사실을 간과하였습니다.

7. 광우병 위험을 고발하는 방송에서 그 반대쪽 주장에 반드시 힘을 실어주어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쪽 주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심의위는 반대쪽 주장에 우호적인 판단을 하였으므로 오히려 공정성을 위반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이상이 심의위의 결정이 왜 지나치게 가혹한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PD수첩의 방송은 심지어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 조치인 '주의'조차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실수와 오역 몇 가지를 근거로 이와 같은 징계를 내리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처사입니다. 심의위원들의 이념적, 정치적 편향성이 이와 같이 왜곡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심의위는 이번 사태를 철저히 되살펴보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방송통신위원회는 앞으로 있을 재심에서 소속기관인 심의위의 실수를 다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부터는 약간 감정적인 비판도 해보겠습니다. 방통위와 그 산하 심의위는 매우 정치적 색채가 뚜렷합니다. 현재까지의 결정을 지켜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댓글에 대한 결정, KBS의 '뉴스9'에 대한 결정, 그리고 최근 방통위에서 내려진 신태섭 KBS 이사의 자격정지 의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매체에 대해서는 매우 가혹한 기준을 적용하여 과도한 결정을 내리지만, 현 정부를 옹호하는 매체에 대해서는 그 반대로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 방통위와 심의위는 스스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고 있습니다. MBC와 KBS에 대해 적용하는 그 기준을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도 적용해보세요. 설마 신문은 방송과 달리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아마 같은 기준을 모든 매체에 적용한다면 매일 신문지면에는 사과의 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다른 분들의 글들을 링크해보겠습니다.
고재열의 독설닷컴, 'PD수첩 작가 회유하려는 언론사 있었다'
같은 블로그, 'PD수첩이 인정하는 실수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블로그, '광우병 후속편 제작하고 싶다'
같은 블로그, 'PD수첩 PD들이 조중동에 전하는 말'
다른 블로거님들의 글도 조만간 가져다 붙이겠습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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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에 대해 두 가지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저는 지금 세계 정세가 FTA를 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유무역을 하는 마당에 혼자서만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버틸 수는 없는 일이지요.
결국 문제는 얼마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느냐겠지요.
지난 번 협상이 아주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내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그 뒷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죠.
더이상 내주지 않고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야 한다는 거죠.

1. 우리 정부의 협상 태도
참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정부는 빨리 비준하려고 난리인 반면,
미국은 오히려 명백한 반대입장을 취하거나 느긋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바마, 클린턴, 펠로시 모두 다 그렇지요.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더 그렇다고 이해하더라도 차이가 너무 확연합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더 손해를 보게 되어있지 않을까요?
협상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런 것이니까요.
미 의회 세입위원회에 있는 랭글 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죠.

"오바마 대통령 돼도 FTA 재협상 안할 것" (YTN 기사)

이걸 듣고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생각은 이런 게 아닐까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부풀려 얘기하고 있다는 거죠.
속된 말로 '뻥카'(bluffing)를 지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어쩔 수 없으니 받아주겠다는 건가요?
그도 아니면 문제가 많으니 재협상이고 뭐고 아예 없던 걸로 하겠다는 건가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간에 미국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에 비하면 우리 정부가 한 행동은 참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쇠고기협상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하나 했지요.
받은 것도 없이 덜컥 쇠고기 수입조건을 크게 완화시켜줬다는 겁니다.
더 큰 실수는 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버티고 있다는 거구요.

사실 쇠고기협상은 FTA의 일부도 아닙니다.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해줬다고 해서, 미국에서 FTA가 비준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죠.
어떤 기자는 우리가 쇠고기협상에서 크게 양보해줬으니 미국도 FTA를 거부할 명분이 약해졌다고 하더군요.
이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이렇게까지 양보해서 FTA를 성사시켜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둘째로 미국이 서로 별개의 사안을 연결시켜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해줄 리가 없습니다.
도덕적으로는 마치 미국이 FTA를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로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가 없는 거죠.
그 때 가서 쇠고기 수입조건을 다시 강화할 수 있겠습니까?
그 대답이 "예"라면 왜 지금 당장 재협상은 안된다는 건지 궁금하군요.

2. 미국의 이상한 논리
위 기사를 보면 오바마나 랭글이나 모두 자동차 무역 불균형을 이야기했다고 하죠.
그 논리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팔린 한국자동차는 70만대인데 한국에서 팔린 미국자동차는 7000대에 불과하다'
이걸로 무역 불균형을 얘기한다면 그야말로 논리학을 배웠는지 묻고 싶습니다.

먼저 미국의 인구는 3억인 반면, 한국은 5천만이 조금 안되는 인구죠.
그리고 정확한 통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미국에서는 거의 1인당 차를 한 대씩 가지고 있죠.
우리나라도 차가 많아졌습니다만, 아직 2인당 한 대 정도에 불과하거나 그보다 안될 것 같습니다.
단순한 추측에 의한 비교라서 신뢰도는 높지 않겠지만, 차가 3억대와 2500만대로 1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100배 차이가 난다며 판매대수로만 얘기하면 사실을 왜곡하는 게 아닐까요?
판매대수로만 비교해서는 안되는 거죠.

두번째로, 무역 불균형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전체 시장을 놓고 봐도 불균형이 있을 수 있는데, 하물며 자동차 시장이야 말할 것도 없죠.
그렇다면 우리도 억지를 한번 써보겠습니다.
현재 컴퓨터 소프트웨어 무역은 매우 심각한 불균형상태에 있습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한국 시장의 대부분을 휩쓸고 있습니다.
워드 프로세서, 백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소프트웨어는 살아남기도 급급한 상황이죠.
그에 비해 한국 소프트웨어는 미국 시장에서 거의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예, 별로 좋지 않은 예였다는 걸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무역 불균형을 이야기하면 이런 오류를 쉽게 범할 수 있지요.

무역장벽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반박해보겠습니다.
미국자동차의 수입관세가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딱히 미국자동차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모든 수입자동차가 동일한 조건이죠.
이건 수입자동차가 사치재라는 견해에 기반한 우리나라의 정책입니다.
(사실 모든 자동차에 특별소비세가 있었죠. 2년전쯤 없어진 걸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군요.)
어느 나라나 그 나라만의 고유한 정책이 있지 않나요?
미국도 의약품에 관해선 FDA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수입 자체를 불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예 수입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무역장벽이죠.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체를 한꺼번에 생각하기 때문에, 부분협상이 아닌 일괄협상을 하고 FTA를 하는 것 아닌가요?
한 쪽에서는 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쪽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딱히 자동차 시장을 꼬집어 무역 불균형을 얘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시장에서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면 FTA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요.

마치며...
지금 한미 FTA를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일부 정치인을 빼고는 고려하지도 않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단지 기사를 보고 생각나는 걸 써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쇠고기 문제가 먼저입니다.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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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글을 하나도 안쓰다가 정치 이야기를 들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참고 참다가 하나 써보려구요.
(재밌는 얘기들 놔두고 답답함이나 토로해야 하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선관위의 최근 판단 중 이해되지 않는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는 '친박연대'의 명칭에 관한 해석이었어요.
박근혜는 엄연히 한나라당에 있는데, 그를 위한 정당을 밖에다 만들고서 그런 명칭을 사용하다뇨?
게다가 선관위는 그 명칭이 합당하다고 손을 들어줬더군요.
우스운 일입니다.
(광고도 우습지만 그건 그냥 봐줄 수 있습니다)
탈당해서 정당을 새로 만든 것이 잘한 일이든 잘못한 일이든, 명칭만큼은 잘못되었어요.

두번째, 이것은 더 큰일입니다.
대운하에 대한 찬반집회를 불법선거운동으로 규정한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원칙없고 제멋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사실 법부터 고쳐야겠습니다.
불법선거운동은 대략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행해지는, 법으로 인정되지 아니한 행동' 정도로 정의되죠.
이 부분이 참 맘에 안들기는 합니다.
법조문에서는 무엇이 불법인지를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처럼 애매모호한 문장을 두어,
선관위의 해석에 따라 불법이 될 수도 있고 합법이 될 수도 있는 여지가 없어야겠지요.
또한 합법적인 행동을 열거할 것이 아니라 불법적인 행동을 열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행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이러이러한 행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이다'라고 하면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제한하니까요.

가장 적절한 예로, 인터넷 상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법을 만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고, 개정할 때도 인터넷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관위는 '공공장소'라는 영역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인터넷까지 포함해버렸습니다.
(여기엔 물론 경찰과 검찰, 법원도 한몫 했지요)
하지만 이것은 이른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법 해석입니다.
형법은 법조문의 유추해석을 금하고 문장 그대로 해석하도록 정해져있으니까요.
(헌법에 위배되는 조항을 사실상 폐지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조항을 자의적으로 만들 수는 없지요)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의견을 빌미로 처벌하고 싶으면 법을 개정해서 처벌 근거를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지금 선관위의 (그리고 검찰, 법원의) 판단은 매우 잘못된 것이죠.

그런 똑같은 일을 이번 대운하에 관한 경우에서도 볼 수 있었어요.
일단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동'이라는 조항 자체를 고쳐야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이 조항대로 따져보자구요.
대운하에 관해 찬성 혹은 반대를 하는 것은 분명히 정책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 누구도 대운하를 하겠다고 나선 정당이 없으니 문제가 되는 건가요?
대운하를 반드시 막겠다고 나선 정당들이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요?
이걸 공약으로 보고, 이 공약과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이 무슨 죄가 되나요?
불법, 허위사실도 아니고,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사실도 아닌 정책에 대한 찬성 반대가 죄란 말입니까?

선관위의 계속되는 실책에 상처받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군요.
수많은 국민들이 상처받고 있습니다.
선관위는 이런 모든 것을 잘 헤아려, 법의 범위 안에서 제대로 된 기준을 마련해주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양용현
,
오늘은 두번째로 우리말에 관한 얘기를 한번 해볼게요.
미국말법이 어느샌가 우리말 속에 깊숙히 침투해서 이제 구분하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고 쓰는 미국말법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하긴 일본말법도 여기저기 많이 섞여있고 쉽게 알아채기 힘든 것들도 많죠.
언어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미 동화된 것을 굳이 찾아내서 고치려는 노력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듯.
(그러다가도 '자주성'이라는 걸 생각하며 발끈할 때도 있지만요 ^^)
하지만 아직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색한 부분들만이라도 좀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두 가지예요.
1. 문장 중간에 들어가는 '그러나'
2. 대명사 '그것'

우리말에서 접속사는 항상 문장 처음에 나오지요.
구어체에서는 좀더 자유롭게 쓰고 있습니다만, 문어체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져왔지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신문, 방송에서 기자들이 쓰는 말에 거슬리는 표현들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경찰청은, 그러나, 이번 사건에 정치적 연관성은 없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더 강조를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 않아요.
다만 평소에 듣지 않았던 말들이라 많이 어색합니다.
말을 시작했다가 '앞의 내용과 대조되는 내용'이라는 걸 깨닫고 말을 고친 것도 아닙니다.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거지요.
왜일까요?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말에 이런 표현이 있으니까, 좀더 유식해보일까 싶어서가 아닐까...?
이것이 제 추측입니다.
그렇다면 당장 그만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경찰청은 이번 사건에 정치적 연관성은 없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얼마나 더 자연스러운가요?
얼마나 더 듣기 편한가요?

말이 나왔으니 덧붙여 얘기하겠습니다만,
미국에서도 이 표현은 고급표현으로, 격식을 갖춘 글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말할 때는, 방송에서도 그다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에요.
정말 강조해서 반전을 얘기하고 싶을 때만 사용하죠.
그래야 강조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그다지 강조라는 느낌도 들지 않고, 게다가 의미 전달도 좀 흐려지잖아요.

두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건 앞의 단어를 받는 대명사 '그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말에서도 상당히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우리말에 없던 표현까지도 미국말법에 맞춰 사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일본의 그것에 비해 반에 지나지 않는다."
저에게는 '그것' 존재 자체가 매우 거슬립니다.
그 부분을 빼도 우리말은 충분히 의사전달이 됩니다. (사실 미국에서도 의사전달은 되지요 ^^)
어차피 '1인당 GDP'라고 쓰지 않고 '그것'이라고 쓰면,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지요.
무엇을 대신해서 쓴 건지 정확히 알려면 문장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만약 문장구조를 알고 있다면 '그것'이 없어도, 뜻을 파악할 수 있겠죠.
뿐만아니라, 우리말은 그 부분을 빼는 것이 더 올바른 사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편이 더 이해하기 쉽지요.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일본에 비해 반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로야 이렇게 쓰면 문법에 틀린 말이 되지만, 우리말은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왜죠?
왜 번역체를 쓰는 걸까요? 부자연스러움을 무릅써가면서까지 말입니다.
역시 유식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아니면 번역하기 편하게 하려고?
당장 그만둬줬으면 좋겠어요.

가끔 혼동하기 쉬운 경우가 있긴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폭이 미국보다 크다."
문맥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과연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폭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교하는지,
우리나라의 대일본, 대미국 무역수지 적자폭을 비교하는지 알 수가 없지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부 기자들의 표현을 빌면,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미국의 그것보다 크다."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대미국 그것보다 크다."
뭔가 좀 헷갈리지만 어쨌든 구분은 됐습니다.
알쏭달쏭해서 모를 것 같긴 해도 자세히 파고든다면 못알아듣지는 않겠죠.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방법은 어떤가요?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미국의 대일본 적자보다 크다."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대미국 적자보다 크다."
좀더 길어졌지만 의미를 좀더 확실하게 알 수 있죠.
'그것'을 쓰는 것보다 훨씬 나아보이지 않나요?

생각보다는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이것도 가능한 한 줄이고 줄여서 쓴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이 상당히 많았는데, 길면 길수록 논리적인 글과 멀어지는 제 글의 특성상, 여기서 줄이는 게... ^^
계속 '미국말법'이라고 했는데 사실 영어식 표현이라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아무래도 미국 때문이 아닐까 해서 굳이 '미국말법'이라고 해봤어요.
다양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양용현
,
유인촌 장관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연합뉴스, "柳문화, 이전 정권 정치색 단체장 물러나야"

유인촌 장관이 오늘 열린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는군요.
읽어보면 그럴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것은 정치색 단체장이라는 전제를 붙여서 말하기 때문이죠.
이전 정권에서 임명했으면 정치색 단체장이라고 규정하는 겁니다.
문화예술계에서 정치색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요?
정치적 성향을 가진 문화예술인사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문화예술단체를 운영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지지했던 인사는 문화정책에 더 보수적인가요, 진보적인가요?

전제 자체가 틀렸습니다.
문화와 정치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니까요.
단지 소신과 가치관이 있을 뿐입니다.
정치적으로 의견이 달라도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관은 같을 수 있지요.
설령 가치관이 다르다 해도 이렇게 쫓아내려 해서는 안됩니다.
가치관이 정반대인 사람과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압니다.
하지만 국가를 경영하면서 그런 호불호를 따진다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국민들은 어떻게 할 건가요?
설득하고 달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생각이 다른 단체장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되죠.

이미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모시기 힘들다고 판단하면 알아서 물러날 테죠.
스스로 물러나라고 압박을 가하는 것은 결국 쫓아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 해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강요한다면 합당한 요구가 아닙니다.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단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만으로 물러나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사실 문화예술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요.
다른 분야에서도, 정치색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검찰, 경찰도 본래 중립이 아닙니까? (90년대 초반까지는 아닌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만)
국정원 같은 경우는 정보기관으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니까 당연히 바뀌어야 하겠죠.
이런 경우는 이미 물러났고, 그 외의 경우는 임기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인촌 장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말 인사에 대해도 문제를 삼았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적법한 인사였고, 또 필요한 인사였습니다.
정치와 관계없는 단체장까지, 대통령이 바뀌기 몇달 전부터 공석으로 비워놓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루나 한 달도 아니고, 퇴임 몇달 전부터 인사권을 놓으라는 것은, 그야말로 월권이 아닌가요?
유인촌 장관님, 오늘의 발언, 재고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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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양용현
,
오늘은 틀린 표현에 관한 얘기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졸업한 후로부터 점점 맞춤법에 자신이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야 교과서에 실린 정확한 표현만 보다가, 이젠 온갖 틀린 표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그래도 가능하면 맞춤법을 지키려고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노력을 좀 하고 있어요. 게다가 영어를 자주 쓰다 보면 우리말이 좀 어색해질 때도 있어서 더더욱이요 ^^;

흔히 틀리는 표현 중에 하나가 '치르다'와 '담그다', '잠그다'입니다.

치르다 (O) 치루다 (X)
담그다 (O) 담구다 (X)
잠그다 (O) 잠구다 (X)

이 동사들은 기본이 '으다' 형태이므로 다음과 같이 활용해야 맞겠죠.

치르고, 치러, 치렀는데, 치를, 치른다 (O)
담그고, 담가, 담갔는데, 담글, 담근다 (O)
잠그고, 잠가, 잠갔는데, 잠글, 잠근다 (O)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잘못되었습니다.

치루고, 치뤄, 치뤘는데, 치룰, 치룬다 (X)
담구고, 담궈, 담궜는데, 담굴, 담군다 (X)
잠구고, 잠궈, 잠궜는데, 잠굴, 잠군다 (X)

정확한 표현을 이용한 용례는 다음과 같이 해야겠죠.

시험을 치렀는데,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아.
잘못을 했으면 반드시 죄값을 치러야 한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이젠 별로 없어요.
물에 온몸을 담그니 피곤이 싹 가시는 것 같다.
문을 꽉 잠가라.
단추를 다 잠그는 것은 좀 답답해요.

그런데 이것을 틀리게 쓰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러다가 '치루다'와 '담구다', '잠구다'가 옳은 표현으로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겁니다. 실제로 맞춤법이나 표준어가 실제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뀐 예가 적지 않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아쉬운 것이 '삼가다'와 함께 '삼가하다'를 옳은 표현으로 인정한 것이었어요. '삼가'라는 말에는 몸짓이나 말 따위를 조신하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지요. 그래서 '삼가다'라는 것은 조심해서 하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고, '삼가 하다'라는 것은 조심해서 한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쓰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지니 '삼가하다'를 인정하고 말았지요. 제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삼가하다'는 틀린 표현이었는데, 당시에도 소위 지식인들 사이에 이렇게 잘못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명의로 된 팻말조차 '잔디에 들어가는 것을 삼가합시다'라고 써있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구구절절 길어지고 말았네요. 하기야 말은 원래 변하는 것이고, 조선시대에 쓰이던 말 중에 지금도 그 뜻 그대로 쓰이는 말이 반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까진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도 아직 변하지 않았다면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로 '치르다' 따위와 비슷하게 활용되는 단어들을 열거해보겠습니다.

끄다: 끄고, 꺼, 껐는데, 끌, 끈다
쓰다: 쓰고, 써, 썼는데, 쓸, 쓴다
크다: 크고, 커, 컸는데, 클
굼뜨다: 굼뜨고, 굼떠, 굼떴는데, 굼뜰
예쁘다: 예쁘고, 예뻐, 예뻤는데, 예쁠
움트다: 움트고, 움터, 움텄는데, 움틀, 움튼다
아프다: 아프고, 아파, 아팠는데, 아플
다르다 (ㄹ불규칙): 다르고, 달라, 달랐는데, 다를
지르다 (ㄹ불규칙): 지르고, 질러, 질렀는데, 지를, 지른다

찾다보니, '치르다'는 '-르다'면서 ㄹ불규칙이 아닌 동사네요. 모조리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예를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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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이명박     깊이 살펴보기 2008. 1. 27. 11:13

어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왜 이명박을 싫어하는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한나라당이라서 싫어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잘못하지 않는 사람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수많은 불법을 저지른 것이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다 결국 슬그머니 사과하고 덮어버리죠.
(그나마 사과를 안하는 것보다 낫긴 하죠)
그리고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서 그 공약들도 맘에 안드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교육정책, 노동정책, 금융과 산업간 균형, 방송 및 언론에 대한 인식, 공기업과 공무원, 정부에 대한 인식,
그리고 대운하!
아직도 강을 이용한 물류정책이 성공할 거라고 믿는 그 저돌적이면서 굳어버린 생각.
환경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몰지각함.
(저도 일부 환경운동가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만...)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김대중 정부의 계승자라서? 내 고향사람들이 지난 대선에서 엄청나게 지지했기 때문에?
물론 아니지요.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원칙을 줄곧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원칙에서 벗어난 적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큰 원칙을 위해 작은 원칙을 포기한 것이죠.
(딱히 예로 들 만한 것이 생각나진 않네요. 원칙을 벗어난 사례를 누군가 얘기한다면 반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관습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총선에서 질 것이 두려워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관습과 맞서고 있어요.
신당 대표 손학규를 몰아붙이다시피 비판한 것은 좀 맘에 들지 않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맞서야 한다는' 자세는 맘에 들거든요.

둘째로 맘에 드는 것은 그 원칙이 저와 상당히 일치하기 때문이죠.
이게 아니었다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위 문단에 적은 것만으로는 단지 존경스러워할 이유밖엔 되지 않죠.
교육정책, 기업정책, 노동정책, 균형발전정책, 인권 및 친일조사보상, 언론정책.
일부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있었습니다. 수능등급제는 저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모든 면에서 나와 생각이 일치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제가 자주 가는 한글로님이나 박형준님 블로그에도 저와 다른 관점에서 쓰여진 글들이 보이곤 합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비슷하고 맘에 드는 글들이라 계속 보는 것이죠.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그래, 이명박이 하는 걸 모두 싫어하지는 말자. 잘 하는 것은 인정해줘야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 썩 맘에 드는 부분을 찾아내진 못했습니다만, 뭐든 잘 하는 게 있기야 하겠죠.
그리고 맘에 안드는 부분이라도 무조건 삐딱하게만 바라보지는 않으려고요.
가능한 한 이해해보려고 하고, 그래도 안된다면 비판을 가해야겠죠.
그래서 지금 고르고 고른 것이, 교육정책과 대운하입니다.
다른 것은 아직도 좀 생각중이랍니다 ^^;

Posted by 양용현
,

매일경제에서 나온 사설을 하나 읽어보았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지만, 수긍은 못하겠어요.
일단 신정과 설날을 둘 다 쇠면 비효율이 되는 이유를 제대로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똑같은 의미의 휴일이 두 번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단지 쉬는 날이 많기 때문인가요?
만약 후자라면, 굳이 '설'을 없애야 한다고 말할 순 없겠죠.
다른 날을 없애도 되는 거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결국 설날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봐야겠지요.
우리에게 설날은 음력으로 한 해의 시작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죠.
말하자면 가족이 모이는 날입니다.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가족들이 모여서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나누는 겁니다.
물론 대가족제도였을 때는 그만큼의 의미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왜 꼭 설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요.
관습이라는 것을 억지로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지 않나요?

설날 여행을 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사설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이 사람들이 설날을 이미 단순한 휴일로 간주하는 증거라고 보는 건 무리죠.
설날에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두가지 중 하나일 것 같은데요.
신정을 쇠거나, 혹은 설날을 쇠지만 연휴이기 때문에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후자의 경우는 설날을 없애야 하는 근거로서 너무 부족합니다.
그 사람들은 설날을 단지 연휴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충분히 그 의미를 알고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직도 설날이 되면 귀성길과 귀경길이 막히는 걸 보면 설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하지만 신정을 쇠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물론 무시할 만큼 적은 숫자는 아니겠지요. 그래서 신정도 없앨 수는 없을 겁니다.

꼭 휴일을 줄여야 한다면, 다른 날을 줄이면 되는 겁니다.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에 저는 찬성합니다.
제헌절이야말로, 정부수립기념일(혹은 광복절)과 같은 의미를 기리는 것이죠.
더 줄여야 한다면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은 어떤가요?
굳이 특정 종교의 축제에 모든 나라가 같이 쉬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대신 개천절과 한글날은 꼭 쉬었으면 좋겠구요.)

세계 다른 나라의 흐름을 따라간다면, 휴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사설에선 말했죠.
휴일마저 꼭 다른 나라와 같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국가란 역사가 만들어낸 것이니까, 각각의 역사에 따라 다른 날 쉬면 되는 겁니다.
이런 논리로 설날을 없애자고 말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지, 하나로 묶으려고 강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Posted by 양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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